【STV 차용환 기자】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손발이 묶인 채 줄줄이 연행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동맹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오만함, 그리고 국민을 지켜야 할 한국 정부의 무력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 단속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건수 채우기’식 무차별 단속이었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합법 비자 소지자와 영주권자까지 포함돼 있었다. 법원이 발부한 수색 영장에도 한국인은 없었는데, 현장에서 무작위로 연행된 것이다. 이는 불법 체류자를 색출한다는 원칙보다 대규모 단속 실적을 올리는 데 급급했음을 보여준다. 하루 3천 명 체포라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민 당국을 압박한 트럼프식 반이민 정치의 전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존 신, 김태흥, 고연수 씨 등 미국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한국인들마저 잇달아 단속 대상이 됐다.
그러나 더 뼈아픈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국민이 수갑과 쇠사슬에 묶여 모욕을 당하는 동안, 정부는 “이송 과정에서는 수갑을 쓰지 말아 달라”는 수준의 요구만 반복했다. 석방이 지연된 이유조차 미국 측 설명을 그대로 전하며 변명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했다. 외교부가 이를 두고 “창의적 상황관리”라고 자평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위안일 뿐이다.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본령은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한국 근로자들에게 “남아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동맹국 국민을 존중해야 할 외교적 의무는 뒷전이고, 숙련 인력을 단순한 경제 자원으로 취급하는 오만한 발상이다. 불법 이민자로 낙인찍어 수갑에 묶어 놓고는, 미국 경제에 필요하니 남으라는 태도는 동맹의 기본 예의조차 저버린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자 제도 개선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이 모욕을 당한 뒤에야 얻어진 부차적 결과일 뿐이다. 제도 개선이라는 포장으로 정부의 무능과 굴욕적 태도를 덮으려 해서는 국민 불신만 더 커질 것이다.
조지아 사태는 한국 기업과 근로자들이 언제든 다시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경고다. 트럼프식 반이민 정치의 본질을 직시하고, 우리 정부도 눈치 보기 외교에서 벗어나 국민 보호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건은 제도 개선의 계기가 아니라 양국 관계의 치욕으로 기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