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980명이 떠나는 사회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35만8,569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980명이다. 같은 해 화장자 수는 33만6,937명으로, 화장률은 94.0%에 달했다. 이제 화장은 한국 장례의 예외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실상의 표준이 됐다. 불과 수십 년 사이 한국 장례의 외형은 빠르게 변했다. 화장시설은 현대화됐고 장례식장의 시설과 서비스도 고급화됐다. 장례 절차는 체계화됐으며 화장 예약과 장사시설 이용도 전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시설과 행정이 발전한 만큼,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의식도 발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장례의 목적은 고인의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고 화장장이나 장지까지 운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고,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건네는 과정까지 포함돼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장례는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가. ◇ 조문객을 위한 장례, 고인을 위한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 일반적인 3일장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사망 직후 유가족은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를 결정해야 한다. 빈소 크기와 제단, 음식, 장례용품을 선택하고 부고를 보내며 화장장과 장지를 예약한다. 곧바로 조문객을 맞기 시작하고 장례비용과 행정절차도 확인해야 한다. 둘째 날에는 입관 절차가 진행되고 조문객 방문이 집중된다. 셋째 날 이른 아침에는 발인한 뒤 화장장으로 이동한다. 사망 시각과 화장장 예약 시간에 따라 실제 장례기간은 3일보다 훨씬 짧아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주는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장례의 운영자가 된다. 누가 조문을 왔는지 확인하고 끊임없이 인사하며, 음식을 살피고 친척들과 장지 문제를 의논한다. 부의금과 비용을 정산하고 다음 절차를 준비하다 보면 정작 고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마지막 말을 건넬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 나는 장례 현장에서 유가족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장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조문객에게 인사하느라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족의 애정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작별보다 장례 운영과 조문객 접대를 우선하도록 만들어진 구조의 문제다. 한국의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이 식사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상주가 손님을 맞는 자리도 있고, 장례용품을 상담하고 비용을 정산하는 절차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가족이 고인 곁에 조용히 앉아 고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공식 절차로 설계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장례가 애도에 미치는 영향 장례가 유가족의 애도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 연구들이 있다. 교토대학교 찰스 베커 교수 연구팀은 사별을 경험한 일본인 165가구를 대상으로 장례 경험과 사별 이후의 건강, 생산성, 의료·상담 서비스 이용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깊은 슬픔은 신체적 문제와 활동 중단, 의료서비스 의존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장례에 대한 낮은 만족도 역시 이후 병원·약국·상담 서비스 비용 증가와 통계적인 관련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후 일본 전역의 사별자 1,078명을 대상으로 전국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가운데 장례에 불만족한 사람은 106명이었다. 불만족 집단은 특히 장례지도사나 종교인과의 의사소통, 설명과 대응 방식 등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들은 장례에 불만이 없었던 집단보다 사별 이후 의료·약국·복지서비스 지출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다만 두 연구 모두 장례 불만족이 건강 악화나 의료비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표본 규모와 모집 방식에도 한계가 있어 “좋은 장례를 치르면 질병을 예방하거나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장례에서 경험한 만족과 후회가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의 기억과 정서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장례지도사와 종교인, 장례식장 종사자가 어떤 태도로 설명하고 가족의 이야기를 듣느냐가 유가족의 장례 경험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 장례 의식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장례 의식과 애도의 관계를 다룬 연구 결과가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장례 참여가 유가족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국제 연구에서는 장례 참석이나 특정 의식의 시행 여부만으로 애도 결과가 좋아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결론도 나왔다. 17개 선행연구를 검토한 혼합방법 연구에 따르면 장례 참여의 긍정적 효과를 확인한 연구가 있었던 반면, 뚜렷한 효과를 발견하지 못한 연구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장례 의식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확정하기에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질적 연구에서는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유가족이 장례 의식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고인에게 작별하며, 그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느낄 때 장례는 애도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가족의 의사가 배제되거나 작별의 기회를 잃었다고 느낄 경우 후회와 고통이 커질 수 있었다. 결국 장례 의식의 숫자나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절을 몇 번 했는지, 조문객이 몇 명이었는지, 장례용품이 얼마나 고급이었는지가 장례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 유가족이 고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작별할 수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애도는 질병이 아니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애도 자체를 질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사별자는 시간이 지나도 강렬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지속돼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세계보건기구는 ICD-11에 ‘장기화된 애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PGD)’를 포함했다. 미국정신의학회도 2022년 발간한 DSM-5-TR에 장기화된 애도장애를 새로운 진단으로 추가했다. 비폭력적인 사망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성인 8,035명을 포함한 14개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약 10명 중 1명이 장기화된 애도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국가와 문화, 사망 원인, 고인과의 관계, 조사 시점과 진단도구에 따라 결과에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의 3일장이 짧기 때문에 장기화된 애도장애가 발생한다고 말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장기화된 애도에는 고인과의 관계, 죽음의 갑작스러움, 사별 전후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기존의 정신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지지의 부족이나 폭력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죽음도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장례 하나로 모든 슬픔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장례는 유가족이 죽음을 확인하고 슬픔을 표현하며 주변의 지지를 받는 첫 번째 공적 공간이자 애도의 출발점이다. ◇ 일본도 ‘짧아지는 장례’를 고민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장, 1일장, 직장(直葬)처럼 간소화된 장례가 증가하고 있다. 장례 규모가 축소되고 지역과 친족 공동체의 참여가 줄어들면서, 일본에서도 장례의 간소화가 유가족의 애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곤도 아리타와 찰스 베커는 일본 장례의 변화와 애도에 관한 연구에서 전통 장례를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장례 형식이 달라지더라도 유가족이 슬픔을 표현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고인과의 관계를 의미 있게 정리할 수 있는 의식의 기능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전통적인 대규모 장례를 되살리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조문객을 많이 부르고 장례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좋은 장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가족장이나 무빈소 장례처럼 규모가 작은 장례에서도 가족이 충분히 참여하고 고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작별이 가능하다. 반대로 수백 명의 조문객이 다녀가더라도 가족이 고인에게 마지막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면 그 장례는 중요한 기능을 놓친 것이다. ◇ 문제는 ‘3일’이 아니라 ‘3일의 설계’다 한국 장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장례를 4일장이나 5일장으로 늘리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장례기간이 길어지면 빈소 사용료와 음식 비용이 증가한다. 유가족과 장례 종사자의 신체적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가족마다 종교와 경제적 사정, 친족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형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3일이라는 기간 자체가 아니다. 그 3일 안에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가족이 작별할 시간이 별도로 설계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나는 한국 장례에 거창한 의식을 새로 추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발인 전 10분에서 20분만이라도 조문객 응대와 장례 운영을 멈추고 가족이 고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시간에는 고인의 약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살아생전 사진을 함께 보며,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자녀나 배우자가 편지와 추모사를 읽고 손자녀가 꽃 한 송이를 올릴 수도 있다. 종교가 있다면 가족의 신앙에 맞는 기도나 의례를 진행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가족의 참여다. 가족이 직접 고인의 삶을 말하고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도록 해야 한다. ◇ 장례지도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현재 장례 상담에서 가장 먼저 오가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예상 조문객은 몇 명입니까?” “빈소는 어느 크기로 하시겠습니까?” “어떤 장례용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장례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례지도사는 가족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도 해야 한다. “고인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고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가족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싶습니까?” 이 질문이 있어야 장례가 고인 중심으로 바뀔 수 있다. 장례지도사는 관과 수의, 제단과 차량을 안내하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고인의 생애가 장례 안에 반영되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앞으로의 장례서비스 경쟁력도 시설이나 상품의 고급화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얼마나 세심하게 듣는가, 고인의 삶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유가족에게 후회 없는 작별의 시간을 제공하는가가 장례서비스의 새로운 기준이 돼야 한다. ◇ 조문객은 많았지만 고인을 기억할 시간은 없었다 조문객을 맞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한국 장례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조문은 유가족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는 사회적 지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문 문화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조문객을 위한 시간이 장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고인과 가족을 위한 시간이 뒤로 밀려났다는 데 있다. 화장률이 94%에 이른 지금, 한국 장례는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서 있다. 장례의 외형을 현대화하는 단계를 넘어 그 내용과 의미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장례의 중심에는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 조문객이 아니라 고인과 유가족이 있어야 한다. 좋은 장례는 비싸거나 많은 사람이 다녀간 장례가 아니다. 가족이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장례가 좋은 장례다. 이제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한다. “고인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리고 장례가 끝난 뒤 유가족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고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전하셨습니까?” 한국 장례문화의 변화는 이 두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