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왜 중요할까. 어떤 이들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의미가 있다. 먹고, 마시고, 자고, 우는 모든 행위는 이유가 있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사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시신을 길거리 한복판에 놓아둔다고 해도 죽은 자는 항의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장례식을 통해 산 자를 위로하고 통합의 정신을 강화한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장례식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냈다. 주인공인 대학 시간강사 딸 ‘고아리’는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고상욱’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전남 구례의 지리산과 광양의 백운산을 제집처럼 누비던 고상욱은 빨치산이다. 1952년 위장자수했고, 1974년쯤 다시 6년 간 감옥 생활을 했다.
고아리는 ‘빨치산의 딸’로 낙인 찍힌 채 살아왔다. 아버지가 빨치산이라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세상이라는 큰 무대에 설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실제로 고상욱 때문에 친척 오빠는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할 수 없었고, 작은 아버지도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삶의 궤적이 바뀐 이들은 아버지 고상욱의 장례식에서 해원(解冤)에 나선다. 그들은 속에 쌓인 원망과 울분을 샅샅이 쏟아놓는다. 젊었을 적 아버지와 총부리를 겨눴던 군인이나 경찰도 장례식을 찾아와 “자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털어놓는다.
고상욱은 사회주의자이기 전에 ‘인심이 좋은 사람’이라 베풀 줄 알았다. 그 베풂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 딸인 주인공의 마음을 풀어준다.
고아리는 아버지를 원망하던 마음을 차츰 풀고 오롯이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장례식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그의 딸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든 긴장이 해소되고, 씻김굿처럼 씻겨 나가는 장례식장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들인 것이다.
상조·장례업계 관계자들은 흔히 “우리는 정말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자부한다. 소설 속에서 보면 정말로 그렇다. 한 인간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일을 우리는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정신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