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김충현 기자】장례지도사가 쓴 책이 공중파 드라마의 원작이 됐다. 양수진 장례지도사(이하 작가)가 쓴 『이 별에서의 이별』 이야기다.
『이 별에서의 이별』은 2018년에 출판된 책으로,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가 겪은 희로애락을 담담히 그려내 호평 받았다.
양수진 작가는 “장례지도사의 생활을 다룬 책이라, 중장년층이 주로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중·고등학생이나 청년층 독자가 많이 읽고 소셜미디어에 서평이나 후기를 올려줬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살지 않는 70~80대 노인들이 신문에서 서평을 보고 출판사에 “책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고 문의해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양 작가는 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응답하라》시리즈를 공동집필한 이선혜 작가가 『이 별에서의 이별』을 읽고 출판사를 통해 양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이 작가는 책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겠다며 양 작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늘이 돕는 것인지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았고, 2019년부터 양 작가는 드라마 시나리오 자문을 했다.
“제 책을 원작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니 감격했죠. 그런데 드라마 시나리오 집필 작업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드라마는 여러 명이 협업을 하는 작업이니까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어요.”
그렇게 양 작가가 자문한 드라마 《일당백집사》는 톱스타 혜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했다. MBC수목드라마로 편성돼 지난 19일부터 절찬리에 방영 중이다. 책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책 『이 별에서의 이별』 리커버 버전도 새롭게 출간됐다.
“2018년도에 책이 첫 출간되고 그 해에 4쇄를 찍었어요. 한동안 중쇄가 되지 않았는데, 드라마 방영 덕분에 감사하게도 리커버판이 출간 되었네요.”
『이 별에서의 이별』 책을 내고 난 후에 양 작가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장례지도사 중 한 사람이었다가 ‘책을 낸’ 장례지도사로 바뀐 것이다. 양 작가의 책이 인기를 끈 후 장례를 다룬 책이 부쩍 많아지기도 했다.
책 출간 후 양 작가는 각종 강연을 다녔고, 여성단체 ‘한국 여성의 전화’와 함께 장례문화에서의 성차별적인 요소를 개선하는 캠페인의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 별에서의 이별』에는 ‘초봄 녘 미처 녹지 못한 눈’이나 ‘기억 속 빛바랜 서고에서 한 권 한 권’ 같은 문학적 표현이 돋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양 작가의 꿈은 소설가 같은 문학가였다고.
“중·고등학교 때 글을 쓰는 게 낙이었고, 교내·지역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 몇 년 간 쌓아놓았던 ‘문학청년의 꿈’을 『이 별에서의 이별』에다 푼 셈입니다.”(웃음)
책을 내고 나서 선물같은 경험도 했다. 온라인서점에서 본 서평이다.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 나이의 문제가 아닌 / 얼마나 치열하게 사유했는지에 달렸음을 / 작가는 글로써 증명하고 있다’
당시 나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던 양 작가는 이 서평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양 작가는 장례지도사가 되려는 후배 세대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처음 장례지도사에 대해 알아볼 당시엔, 정보가 부족해서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죠. 요즘엔 제 책 뿐만 아니라 장례지도사, 유품정리, 호스피스 등 다양한 서적과 장례업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등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업계 입문 당시 훌륭한 선배님들께 교육을 받으며 뼈에 새긴 마음이 있어요. 그것은 유가족을 내 가족처럼, 고인을 살아계신 분처럼 대하고 매사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에요.”
양 작가는 현재 육아를 하며 일을 쉬고 있다. 하지만 현장 복귀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다.
“일을 하고 싶어요. 쉬면서 일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어요. 장례 현장이든 사무직이든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