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임정이 기자】열쇠 수리업체를 운영하는 A(68)씨는 자신이 잘 알던 사람이라 의심의 여지 없이 문을 열어줬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알고 보니 잘 알던 사람은 회사 고위 임원이었고, 해당 임원이 퇴사 후 회사 쪽에 보복하기 위해 A씨의 손을 빌린 것이다. A씨는 그 사건 이후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무조건 집주인 등의 신원을 확인한다고 했다.
종종 낯선 사람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돈이 필요한 열쇠공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덜컥 열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위험한 행위다. 미국의 일부 주에선 자격증 발급 때 열쇠공 배경조사 또한 철저히 한다. 각자 양심에 맡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법규범의 괴리다.
19일 법조계 설명과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남의 집 도어락을 무단으로 절단한 사건에서 지시한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주거침입과 함께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직접 문을 연 열쇠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법상 과실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처벌하는데 재물손괴는 예외 사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리비를 내고 문을 뜯어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라면, 열쇠공이 고의를 가지고 문을 열었다고 보지 않는다. 변호사는 “열쇠공의 경우는 집주인인 줄 알고 대상 자체를 착오한 것이기 때문에 과실로 보게 된다”며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있겠지만, 이 문제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열쇠공을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보더라도 지시한 사람과 공모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쉽지는 않다. 이에 무단으로 도어락을 훼손하는 경우를 막으려면 사실상 열쇠공의 양심에 맡겨야 가능한 상황이다.
열쇠공에 대한 등록·허가 규정이 없는 탓에 사업장을 마련하는 데에도 제한은 없다. 열쇠협회 추산으로 국가공인열쇠관리사 자격시험도 전체 수리공 중 4%만 취득하고 있다. 열쇠공에게 신원조회를 할 수 있거나, 신원조회를 강제로 하는 법률 또한 없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