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날 필자와 함께 동행 했던 이들은 흔히 말하는 '베이비부머세대'이다. 그러면서도 세대 상으로 조금 못 미쳤다하여 ‘낀 세대’ 또는 ‘깍두기 세대’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세대를 현재 50~59세로 가정할 때 그 중간쯤에 해당되는 나이다. 그런 우리 세대가 직장에서 은퇴행렬의 주인공이 된다는 소식이 속속들이 전해지며 은퇴크레바스(Crevasse: 빙하의 표면에 쪼개진 틈)에 이은 소득크레바스로 떨어지고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간간히 술자리에서 또래들은 농담조로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단한 세대라며 이 사회에서 뭔가 더 해야 하는데 하나 둘 자리에서 떠나게 되니 슬퍼지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의 50대는 자란 환경에 따라 조금씩 편차는 있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 또한 사회적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의 20대는 대학 캠퍼스에서 한국사회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며 민주주의를 외쳤고, 일부는 빛 한줄 들지 않는 가리봉동의 쪽방 촌에 터를 잡고 수출의 다리 밑을 분주히 오가며 구로공단 등의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가난탈출만이 살길이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가정을 돌봐야 했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부흥도, 세계1위 불지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런 50대가 지금 또다시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이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행렬의 주인공이 되면서 도마 위에 오르게 됐고, 이어 제2의 인생 설계하려는 포지션을 취하면서부터다. 어떻게 제2의 인생을 살 것인가를 두고 이들이 또다시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들이 현재와 미래가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안정하고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는 50대에게서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각 세대별로도 쉽게 관찰된다. 어렵사리 대학에 입학해 각종 스펙 쌓기에 열중하더라도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다행히 직장을 얻더라도 30∼40대에는 상시적 구조조정의 불안을 견뎌내야 하며, 은퇴가 가까워져 오는 40대 후반부터는 퇴출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50∼60대 은퇴 후에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구했더라도 이전보다 한참 떨어지는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21세기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인류는 노동의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앙드레 고르’에 따르면 1980년대에 이미 세계 노동인구의 3분의 1은 과잉 공급돼 있었는데, 따라서 어느 나라이건 일자리 창출은 중대한 정책과제의 하나를 이뤄 왔다. 90년대 우리나라의 경우, 회사의 조직적 강압과 인간성의 훼손을 다룬 ‘회사 가면 죽는다’는 책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거친 표현이긴 해도 죽더라도 회사에 가고 싶다는 게 우울한 현주소일 것이다.
주목할 것은 문제가 이렇게 중요한 데도 정작 공론장에서 노동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왜일까? 필자는 여기서 두 가지에 주목하고 싶다.
먼저,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적 힘의 관계가 공론장에서 노동 담론을 불편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 공론장에선 노동문제가 어느 정도 활발히 다뤄지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노동의 미래에 대한 대안들이 많은 경우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토론이 비활성화되어진다는 점이다.
다음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거시적으로 정보사회의 진전이 일자리를 결국 줄이는 경향을 고려할 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는 상당히 괜찮은 대안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소수의 나라들을 제외하곤 여전히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는 노동시장에 관계하는 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부 등의 이익 및 가치의 충돌이 그 배경적 요인으로 놓여 있다.
노동문제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시장, 노동과정, 노사관계, 그리고 사회적 타협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쟁점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핵심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베이비부모 세대는 물론 그 다음세대에게까지 미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우리 사회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문득 은퇴선언을 하며 "조금 늦었다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는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전 유시민 의원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의 말대로 이제 50대는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홀로서기다. 그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새 일을 찾고 살아남기 위해서 혼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요리도 배워야 한다. 나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인 만큼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창업이든 귀농이든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해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수많은 경험을 쌓아오며 내공 쌓인 50대가 아니던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편 이들은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경험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세대다. 역경을 이겨냈고,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뒷바라지 하며, 자녀결혼까지 대비해야하는 짐을 한꺼번에 짊어진 이들에게 정부는 보상을 해주어야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서 이들의 경제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진입한 작금의 시대에서 고용불안과 노후준비 부족으로 박탈감에 빠진 이들이 은퇴한 뒤 종로 탑골공원 인근을 배회하며, 살아온 세월을 운운하고, 한탄하며, 소주잔 막걸리 잔에 의존해 남은 50여 여년을 살다가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에 큰 불행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대한민국을 복지사회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노재환 논설위원 (고려대 연구교수) news@stv.or.kr】
www.s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