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현행 자본시장법이 급격한 금융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법령에 허용되는 행위를 일일이 열거하는 '규정중심 규제'에서 일반 원칙만을 제시하는 '원칙중심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금융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핀테크 혁명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맞게 자본시장법상 규제 체계를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제를 맡은 김용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시장을 규제 체계가 포용할 수 있으려면 혁신이 필요하다"며 "금융 혁신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라도 원칙중심 규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중심규제는 바람직한 결과 달성에 목적을 두고 법령에 일반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결과 달성 방법과 과정은 금융업권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법령에 세부적인 방법과 절차 등을 일일이 열거하는 규정중심규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김 교수는 "2007년 자본시장법이 시행될때 금융투자상품 포괄규제 도입 등을 통해 선진화된 흐름을 따라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금융 선진국 수준의 규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행령 등 하위규정이 규정중심 규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규제 체계로 인해 금융투자업계가 규제에 순응하고 수동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지 못하고 있다"며 "또 기준 규정중심 체계에서는 신속적 입법이 이뤄지지 못해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투자자보호 사각지대도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도 원칙중심 규제 체제로의 전환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원칙중심 규제는 우리 자본시장이 추구해야할 가치와 기능을 성찰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 속도제한 규정으로 비유하자면 '고속도로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운전하지 말라'에서 '운전자는 안전을 위해 신중하고 합리적인 속도 이상으로 운전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미래 금융산업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규제를 변화된 환경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위는 혁신적 금융사업자에 대해 한시인가, 개별규제 면제 등 특례를 적용하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내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찾아온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지속적인 후속 규제가 덧대기 식으로 과도하게 생산됐다"며 "예외의 예외를 낳는 후속 규제들의 속출로 자본시장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시장 참여자들의 규제에 대한 내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원칙중심 규제패러다임 전환은 일부에서 우려하는 시장 친화적인 규제 환경 완화 내지 규제 완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원칙중심규제는 현행 규정으로 정해져 있지 않는 부분도 규제하는 효과가 있으며 엄격한 사후 책임으로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엄중하게 대응하는 규제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원칙중심규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최원진 JKL파트너스 상무는 "자본시장법의 원칙중심규제 도입의 성고가 미미한 것은 한 나라의 금융법 체계를 대륙법계에서 영미법계로 전환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며 "수십년간 뿌리깊게 자리잡은 대륙법계 관행이 함께 변화돼야만 비로소 성과를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 상무는 "입법부는 금융법에 있어 원칙만을 법률에 담고 구체적 규제는 하위법령·협회나 거래소의 자율규제·금융사 내부통제에 담도록 양보하는 규율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며 "법원은 판례를 통해 법률상 원칙을 해석해 구체화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원칙중심규제는 규제의 내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금융회사의 강화된 내부 역량을 필수적인 전제 조건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임 팀장은 "일본은 2007년 '금융규제의 질적 향상' 발표후 원칙중심규제의 확대를 추진하면서 영역별로 원칙중심·규정중심 규제를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법체계도 일본과 같은 대륙법 체계이므로 일본의 접근 방식이 벤치마크로서 이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