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고, 죽음이 올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해 초연히 말했지만 인간에게 죽음은 삶과 더불어 2대 난제이다.
특히 한국이 다사(多死) 사회, 일명 인구 데드 크르스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죽음을 관리할 것인가’가 큰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일반적으로 고인의 주변인들은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에 연락한다. 상조회사에서 파견된 장례지도사와 행사 팀장은 유족을 위로하고 고인을 장례식장에 모신다.
이후 장례식 도중에 고인을 염(殮)한 뒤 발인하여 매장일 경우 추모공원으로, 화장할 경우 화장장으로 향한다.
매장이냐 화장이냐에 따라 고인의 운명은 또 바뀐다. 고인이 평소에 유언이나 사망 후 수습방법에 대한 말을 남기지 않았을 경우 유족의 뜻대로 장례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한국에도 슈카쓰(終活)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슈카쓰란 일본에서 쓰는 용어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작업’이다. 유언장을 쓰고, 유산 처리 방법을 정하고, 장례식의 형태를 미리 지정해두는 것이다.
상조와 장례, 사후처리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초반에 슈카쓰를 덧붙이자는 것이다.
화장 후 봉안당 납골 과정에서 ‘명당’을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시립 추모공원의 경우 안치 순서를 정할 수 없으니 고인이 안치된 칸의 층수가 낮은 경우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유족이 많다.
이에 시립이 아닌 민간 추모공원이나 봉안당을 이용할 때 미리 층수나 위치를 예약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유족은 가까운 이의 사망이라는 황망한 경험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상황을 간단 명료하게 정리해줄 ‘원스톱 서비스’가 필요해 보인다.
상조와 장례, 안치 그리고 그에 앞서 슈카쓰 활동까지 토털 케어를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