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정치팀】= 문재인 대통령의 여름휴가가 3일 절반을 지난 가운데 북한 미사일 발사로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 색깔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오는 5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문 대통령이 국가 현안을 돌파할 어떤 해법을 내놓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문 대통령은 진해 군 휴양시설에 머무르면서 외교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국가 동향을 보고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은 휴가지에서도 업무지시를 하고 화상회의 등을 열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청와대 밖에 있더라도 국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지난달 30일 하루 늦춰 휴가를 떠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전자결재로 임명하고 지난 2일 한국형 잠수함을 인도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을 만나 방위산업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애초 청와대는 "이번 문 대통령의 휴가 컨셉은 푹 쉬다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내 안팎 사정 때문에 문 대통령은 '휴가 같지 않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미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으면서 현명한 선택을 강조하는 '베를린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경색된 가운데 문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베를린 구상을 진전시킨 '진해 구상'을 선보일 지 주목된다.
지난달 6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은 쾨르버 재단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구상 연설에서 "이제 북한이 결정할 일만 남았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오직 북한이 선택할 일"이라며 북한의 결단을 바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구체화하는 차원에서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각각 7월 21일과 8월 1일에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조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마친 11일 뒤 북한은 한밤에 '대륙간탄도(ICBM) 미사일'로 강렬한 무언의 답변을 보냈다.
북한이 화성-14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지 24일 만에 또다시 고강도 전략 도발을 하면서 국제 사회는 대북 제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52분간 통화하고, 문 대통령이 휴가가 끝나는 오는 5일경 미·일 정상 통화를 할 예정인 가운데 한반도 현안 논의에 우리나라가 배제된다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논란은 격화되고 있다. 이날도 야권에서는 엄중한 시국에 문 대통령이 정상 통화를 여름휴가 이후로 미뤄 "안보도 휴가 중이다"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휴가를 미루는 것보다 얼마나 대응체계를 잘 운영하고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대통령이 예정된 휴가를 안가면 북한에 우리가 끌려다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여러 고민 끝에 나온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오는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반도 국면 전환의 계기가 마련될 지 주목되고 있다. ARF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안보협의체로 북한은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리용호 외무상을 대표로 파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외교장관 양자회담의 경우 현재로서 아무 것도 정해진 바가 없는 상태다. 다만 다자회의인만큼 예정에 없던 회동이나 비공개 접촉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회동이 성사된다면 새 정부 출범 이래 첫 남북 당국 간 접촉으로 당면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물꼬가 트일 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브리핑을 열어 "어느 시점에 북한과 앉아 미래에 대해 대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의 정권교체와 붕괴를 노리지 않는다는 입장도 또다시 확인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을 둘러싼 여러 대응 시나리오가 무성한 가운데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하는 순간 우리나라의 주도권이 상실될 우려는 있다. 코리아 패싱의 현실화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우리 정부의 계획은 뒷좌석으로 물러나는 셈이다. 오는 5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문 대통령이 얼마나 균형있고 실리적으로 새 정부 첫 외교안보 시험대를 통과할 지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