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정치팀】= 북한과 중국이 반(反)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연대를 형성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를 원치 않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가 와해되고, 대신 한·미·일 대(對)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ASEAN)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같은 항공편으로 지난 24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 도착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간) 별도 양자회담을 열었다. 양국이 아세안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양자회담을 가진 것은 2년 만이다.
이날 현지 외교 당국자 등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이날 양자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리용호 외무상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공동 관심사는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전날 밤 왕이 부장이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최근 한국 측의 행위가 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는 직설적인 발언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고, '최근 행위'로 틀어진 신뢰를 회복할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 측의 최근 행동, 북·중 양국 공동의 관심사를 모두 아우르는 것은 사드 문제다. 한미 양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속적인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군사 주권적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사드 배치 결정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자국의 안보 이익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은 이러한 정세 흐름을 적극 활용, 사드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역내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동의 논리를 펼쳤다. 미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군사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드를 들여오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라오스에서 열리는 외교장관회의에서는 대립구도가 형성된 6자회담 당사국 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북제재 공조의 핵심 축인 미국과 중국간 양자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도 대립 중이어서 치열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연쇄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각국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 만큼 향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경협 활동이 활발해지는 등 다소 느슨해진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한 대립구도가 이어져 민생 분야에서의 교류 활동을 대폭 허용할 경우 대북제재 공조 효과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이번 연쇄 외교장관회의 마지막 날 열릴 예정인 ARF 의장성명 문안 채택을 놓고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장성명의 경우 북한을 포함한 27개 참가국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식인 데다 한 두 나라가 반대해도 문안 채택이 쉽지 않은 '합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안 채택에 재량권을 가진 의장국이 북한과 우호적인 라오스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나아가 중국과 북한 등을 중심으로 사드 관련 문안을 포함하자는 의견이 제시될 경우 우리 정부가 오히려 난감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