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역사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국학박사 김진경 씨의 ‘고구려 평양성에서 바라보는 초주와 해주’가 출간되었다.(도서출판 어드북스) 이 책은 그가 15년간 역사책을 독학하여 얻은 주요 역사적 지명에 대한 기록으로 중국 사서 지리지의 내용을 토대로 그릇된 역사적 지명의 본래 위치를 추정하여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개념에 대한 관점은 학자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과거 선조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설계해가는 힘을 가진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잘못하고 실수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하고, 잘한 것은 귀감으로 여겨 삶을 변화시킨다면 선조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고 풍성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볼 때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세월이 모여 이룬 역사는 그 과정에서 특정 세력에 유리한 내용이나 지배계급의 편향된 이데올로기 등이 삽입되어 사실이 변질되고, 퇴색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역사 왜곡이 있었고, 사대사상, 즉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우상시하던 역사관으로 인해 잘못된 역사 기록이 더욱 빈번했다. 일정 지역의 지리와 특징을 담은 지리지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큰 틀에서 볼 때 이 책은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를 밝힌 ‘할아버지’의 논문을 토대로 손자 ‘천손’이 추정된 실제 위치를 찾아나서는 역사 여행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단순히 ‘천손’의 생물학적 ‘할아버지’라기보다는 잘못된 지명 표기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헤어져 있었던 ‘조상’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띈다.
할아버지의 논문은 바로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각종 문헌을 해석하고 분석하여 추정한 결과물이다. 중국 25사 중 ‘한서’(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위서’,‘남사’,‘북사’,‘수서’,‘구당서’,‘신당서’,‘요사’ 등의 지리지에 근거하여 유주(幽州) 지역에 속하는 지명들이 시대별로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를 직접 밝혀 내었다. 모든 기록이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고, 누락된 지명, 의도적으로 삽입된 위서 등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흩어져 있는 지명을 종합하여 각각의 배치관계를 파악했다.
또한, 고지도의 지명 간 거리를 잰 뒤 축적을 고려하여 환산했다. 하지만 사서에 쓰여 있는 거리단위인 ‘리’는 한척과 당척에 차이가 있고, 1리에 대한 타 문헌들의 연구결과가 일정하지 않아 약간의 오차는 존재할 수 있으며 지도 상의 거리는 직선거리이기 때문에 실제 이동거리와는 전혀 다른 값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것을 최소화하는 대책으로 저자는 리 단위의 실제 이동거리를 km 단위의 직선거리로 변환하기 위한 ‘환산상수’를 도입하는 등 세밀한 작업을 행했다.
이 책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80여 개에 달하는 지도 그림을 실어 특정 지명의 추정위치를 하나하나 표시했으며, 지명 간 거리도 보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그 아래로 계산 공식을 넣었다. 수학이라면 지레 겁부터 먹는 분들도 있겠지만,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같은 간단한 식이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머리말을 통해 ‘지명의 올바른 위치를 발견한 것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고대 시절에 헤어진 친척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직계 친족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공유하던 조상님들의 또 다른 후손을 찾은 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역사 속 잘못된 위치 표기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 살던 조상을 찾았다는 저자의 깊은 역사의식과 오랜 세월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기대해 본다.
【임창용 기자 news@st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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