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임창용 기자=우리민족은 처음부터 위대한 민족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일컬어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했다. 군자(君子)가 죽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는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子欲居九夷]”고 했다. 구이는 동이(東夷)족으로 다름 아닌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누추한데 어찌 하시렵니까[陋 如之何]?” 공자는 이에 “군자들이 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자는 누추하더라도 덕이 충만한 군자의 나라에 살고 싶다고 했다. 바로 우리나라를 뜻했다. 공자(BC551~BC 479)는 세계 4대 성인(聖人)중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춘추시대에 활약했던 대사상가(大思想家)이자 교육자였다. 그런 공자가 “국에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인 구이(九夷)나라에 가고 싶다”며, 뗏목을 바다로 띄웠다고 한다.
평생을 군자사상 정립을 위해 군자학(君子學)연구에 몰두
우리 한민족은 처음부터 위대한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임을 깨닫고, 평생을 군자사상 정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학문적 연구에 몰두한 정보석 군자사상실천국민운동본부 총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사학의 선지식으로, 논어에 도울 김용옥 교수가 있다면, 군자학으로는 학문적 깊이에 있어, 정 총재가 유일하다. 정 총재는 본래 승려였다. 물론 지금도 승려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님은 삭발을 하지 않는다.
한때는 한국불교를 선두에서 이끌며, 불법(佛法)을 펼치기도 했지만, 스님이 군자학을 연구하며, 군자사상 정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평생을 학문적 연구에 몰두한 결과, 우리 한민족이야말로 군자불사지국이라는 위대한 민족임을 깨닫고, 그 모든 화두를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47년 간, 스님은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오직 한민족의 혼을 일깨우기 위한 사명감으로 범국민적 계몽활동을 펼치는데 희생과 헌화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스님에 따르면, 본래 우리민족은 처음부터 위대한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었다고 한다. 공자가 그토록 그리워한 나라,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 바로 단군의 자손인 우리민족이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민족이 동이(東夷)민족이라 하여, 夷(이)자를 "오랑캐 이"라고만 여겨왔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의 학설도 실상은 동이(東夷)란 동쪽 오랑캐 인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의 근본을 밝히는 <설문해자>를 보니, 이(夷)는 "크게 어질다"는 뜻으로 되어 있고, 군자불사지국은 곧 위대한 우리민족을 뜻한다는 것이, 스님의 군자사상 정립을 위한 연구결과 여러 가지 고증을 통해 역사학적으로 확연하게 밝혀졌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나라 책도 아니고,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는 중국의 <설문해자>에 있는 내용으로 <동방예의지국(동방의 예禮와 의義의 나라)>이라는 말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에도 동이(東夷)는 천성이 밝고 순박하여, 공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구이(九夷)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중국인들이 동이민족을 이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러한 역사학적 사실을 토대로 스님은 군자사상을 경쾌하게 밝혀냈고, 군자사상의 새로운 정립을 위해 평생을 연구와 학문적 저서활동으로 화두를 타파하며, 오직 우리민족의 위대한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하여 희생과 헌신으로 일관했다.
“이와 같은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동이(東夷)’라는 말이 ‘동쪽 오랑캐’로 전락되었는지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이제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경을 초월하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전개됨으로써 동이(우리)민족의 우수성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군자는 하늘의 자손, 즉 우리민족을 뜻하는 개념
한편, 스님의 학문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자는 자신의 이상적 인간상을 군자(君子)로 집약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그에 필요한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 조건이자 본질은 관계에 있다고 보았고, 다양한 사회관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자기를 확립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관습이나 규범, 덕목을 갖춰야한다고 주장했다. 결국은 공자 철학의 덕목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이 바로 인(仁)으로, 인(仁)이란 사람을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이는 바로 사람다움과 인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의 저서 군자학에도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는데, 스님의 주장에 따르면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인간다운 인간,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울러 우리가 인간답기 위해서 갖춰야할 여러 가지 세부적인 덕목은 공손함, 관대함, 너그러움, 믿음직함, 민첩함, 충실함, 은혜로움 등으로, 이러한 덕목은 자신의 욕구나 이익, 권리를 타인에게 요구하기보다는 먼저 타인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자기겸양의 태도로 타인과
의 관계 속에서 이기적인 주체가 아니라, 도덕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확립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보통 젊은 남자와 미혼 여성의 이름 끝에 군(君)과 양(孃)을 붙여 부르는데, 본래 군은 ‘임금 군’이나 남자의 이름 뒤에 쓸 때는 임금이 아닌 그저 남자라는 뜻으로 쓰이며, 양은 ‘아가씨 양’이므로 미혼의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양은 낭자(娘子: 소녀의 존칭)라는 뜻으로 낭(娘)과 혼용돼 오다가 여자의 성이나 이름 끝에 붙여 미혼의 처녀를 뜻하고, 요즘 흔히 쓰이는 미스(Miss)를 의미한다. 다만, 군의 뜻은 좀 더 다양하고 깊어 한번쯤 검토해 볼만하다.
따라서 군(君)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군공(君公)은 임금, 군권(君權)은 왕권, 군도(君道)는 임금이 지켜야 할 도리, 군령(君令)은 임금의 명령, 군림(君臨)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스님은 학문적 연구와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예로부터 군자불사지국이며 천손(군자)의 나라라고 예찬해 온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중국인들이 동이를 다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여긴 것은 동이, 즉 우리 민족을 ‘하늘의 자손’ ‘군자의 나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스님의 저서 군자론 요의를 보면, 바로 그 사상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로 계승돼 왔는데. ‘단군’은 중국 문헌에 나오는 실존 인물이며,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때라는 기록이 있으나 우리는 국가 병란과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사료들이 소실돼 상고사를 밝혀줄 자료가 제한적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아울러 국내외 사료를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민족의 뿌리요 반만년 역사의 절반인 고조선을 복원하고, 부여와 고구려 등 우리의 뿌리를 시급히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자학을 통한 군자사상 정립, 민족혼 성찰에 크게 기여
한편, 공자 사상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고,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인(仁)을 실천하는 자로, <논어>의 '계씨'편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으니, 하늘을 두려워해야 하고, 대인을 두려워해야 하며, 성인의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 있음을 강조했다. 즉, 군자는 하늘이 내게 부여한 참다운 인간의 길을 가야 할 사명을 따르고 성인의 말씀을 존중해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이처럼 군자는 먼저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관심을 갖고, 의리에 밝으며 도덕적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스님의 주장에 따르면, 군자의 인은 '殺身成仁(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살신성인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희생정신과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군자란, 온갖 재난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야 하며,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해서 뜻을 바꾸는 사람은 진정한 군자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인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인을 실천하는 것은 곧 자기의 몸을 희생해서 이루게 되니, 많은 인내와 노력을 통해 진정한 군자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스님은 우리민족은 본래 위대한 민족정신을 지니고 있는데, 지금은 도처에서 무례함이 넘쳐나니, 이제 우리 모두 자성하고 성찰하여 예의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방예의지국의 기원으로 제시한 출전부분이 후한서 등과 충돌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 출전은 공자의 후예인 공빈(孔斌)이 지었다는 동이열전으로,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서두에서 “동이가 천성이 유순하고 도리로 다스리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일컬어졌음을 학문적 연구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스님은 지금도 남해대교를 지척에 두고 있는 하동의 시골마을에서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하여, 저서집필과 군자사상 정립을 위한 사명감으로 국민적 계몽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범국민적인 공익 활동이지만 정부의 지원이나 지자체의 협조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자비를 들여, 무려 47년여 기간을 우리민족의 혼을 일깨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스님은 학문적 연구를 통해서, 공자는 군자의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위한 경전으로 춘추시대 이전의 여러 나라의 민요나 주나라의 조정에서 의식이나 제사를 지낼 때 부르던 가요 등을 편집한 《시경(詩經)》과 주나라가 천명(天命)을 받아 왕조를 창시할 시기의 왕조의 기록류를 정리한《서경(書經)》등 종래의 전통을 익히고 이어가는 데 마땅한 서책들을 교범으로 사용하였음을 학문적 연구를 통해 밝혀내기도 했다.
특히, 스님은 공자의 군자교육(君子敎育)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인의예지'였다고 강조한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은 하나의 문장으로서 명백히 개념이 규정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박애, 도(道),덕 ,선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심한 휴머니즘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이름을 바르게 하고, 이에 따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책임과 본분을 다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스님의 저서에 수록된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과 관련한 내용은 무수히 많은데, 주요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군자론요의(君子論要義)
“우리 한민족은 처음부터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이라는 민족혼과 국가사상을 지녀온 위대한 민족으로, 이 세상에서 君子요 君子不死之國이라고 칭송 받아온 민족은 우리 한민족이 유일함을 강조하며, 따라서 저서의 내용은 이와 같은 군자사상으로써, 우리 한민족의 민족혼과 국가사상을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간했음을 강조했다.
# 군자론(君子論)의 집필 의도
군자(君子)라는 명칭의 출처와 이 군자(君子)가 우리 한민족과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그 내용이 갖는 인간, 인격의 최고위에 달한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기술했으며, 본서에서 사서삼경과 기타 중국 고전인 순자 등을 통하여, 군자 용어가 들어 있는 구절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인용하지 않고, 본서에 맞는 집필 의도에 맞는 것으로 취했다. 따라서 본문에 註를 바로 붙여 단 것은 후학들이 그 원전과 원문을 쉽게 찾아 대조해 볼 수 있도록 그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군자해설에 있어, 각기 번호를 매긴 것은 각 항목의 구분과 해설의 중복을 가능한 한 피할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으로, 그러함에도 구태여 상론(詳論)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중요 내용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중복을 허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 한민족의 가정교육 저서의 주요 내용
우리 한민족의 일반 가정에서의 순수한 우리식 유자녀 가정교육을 위해, 명실 공히 한민족의 가정교육의 내실을 갖춤으로써 우리 한민족 자손들이 모두 참된 인격을 갖춘 개개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술한 책으로 본서의 집필은 1994년에 시작하여 2007년에 완성된 저서로 원고지 총 1872매 분량으로,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과 많은 스승들에게 한민족의 가정교육에 대한 기초 이론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학의 거두로 스님은 이렇듯, 평생을 군자사상 연구에 몰두하며,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현재도 군자사상 실천을 위해 군자론 강의 및 연수를 위한 연수원과 강당 등을 사비를 털어 건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