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관음舞 공연-민간외교의 가교역할
임창용 기자=지난 5월 하순, 세계적인 중국의 장애인예술단을 초청하여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그 화려한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던 한국크로마하프의 선구자 유경혜 회장은 국제문화교류를 통한 민간외교로도 국위선양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크로마하프의 산증인으로 크로마하프를 실용악기, 생활악기의 틀에서 벗어나 크로마하프 고유의 아름다운 음향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중국이 자랑하는 국보급 인간문화재인「천수관음」춤 공연이 경북 성주에서 펼쳐졌다. 지난 5월 하순, 국제문화교류로 국위선양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크로마하프예술협회의 유경혜 회장의 초청으로 천수관음무로 유명한 세계적인 중국 장애인예술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공연은 화려하고 성대했다. 그리고 그 감동의 무대뒤에는 중국예술단을 초청한 주인공 유경혜 교수가 있었다.
천수관음 舞 중국장애인예술단 초청 공연 성황리에 마쳐..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을 선물하고 있는 중국장애인예술단은 지난 아테네 올림픽 폐막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특히, 미국 유럽 등 50개국 공연에서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낸「천수관음」춤은,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예술혼으로, 지난 2007년 유네스코는 이 예술단을 ‘세계의 평화예술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국내 모 지상파의 ‘스타킹’ 이라는 프로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중국장애인예술단(中國殘疾人藝術團)의 천수관음무(手千觀音舞)는 언제 보아도 인간승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더구나 단원 모두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룻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으로 호흡을 맞추며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한편, 이 예술단은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주석의 장남인 덩푸팡(鄧樸方)이 1987년 창단한 단체로 대학 때 4층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덩푸팡이 총괄하고 있으며,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외국을 방문할 때, 동행하는 의전공연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 30여 개국에서 대통령과 수상 등 정상들이 관람한 가운데 재량을 뽐내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의 카네기홀과 이탈리아의 스카라 대극장 등 세계 2대 예술의 전당에도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세계장애인의 대사로 전 세계 6억 장애인들에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천수관음무를 공연하는 21명 중국 장애인공연단의 리더 태려화(邰麗華)는 2005년 중국 CCTV의 설날 프로그램에서 21명의 청각장애인과 '천수관음'을 공연하여, 하룻밤 사이에 중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관음저저(觀音姐姐)'의 리더였던 "태려화(邰麗華)"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고 한다.
중국장애인예술단 공연의 상징은 천수관음(千手觀音) 舞에 있다. 천수관음이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 또는 천비(千臂)천안관음이라고도 한다. '천'은 무량·원만의 뜻이고, '천수'는 자비의 광대함을, '천안'은 지혜의 원만·자재함을 나타낸다. 천 개의 손 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국제문화교류를 통한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
특히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는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21명의 청각장애 무용수들이 손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무로 ‘하늘이 내리 기적의 춤’이라 불린다. 《삼국유사에는 분황사(芬皇寺)의 천수관음에게 빌어 눈먼 아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천수관음무는 공연을 보면, 마치 여자 무용수 한명이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러나 잠시 후 점차 많은 팔이 나타나더니 수많은 팔이 보인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감동적이다.
중국장애인예술단을 이끌고 온 왕소분 교수는 유독 유경혜 회장과의 우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한국! 사랑합니다’를 연발하며, 유경혜회장과의 우정을 과시했던 왕소분 교수는 다름 아닌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부인의 스승으로도 그 명성이 남다르다. 그녀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국민들과 더욱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유경혜 회장은 한국크로마하프의 산증인으로도 유명하다. 크로마하프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음악의 장르이자, 악기일수도 있지만, 한국크로마하프를 선두에서 이끌며, 하프연주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던 그녀는 과거 한국크로마하프의 교육 수준은 정말이지 악화일로였다고 회고한다.
크로하프 악기가 처음 국내에 도입되었을 당시만 해도, 당시 미개척분야의 악기였던 만큼 크로마하프의 연주법 연구보다는 그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 악기의 판매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유 회장은 "클래식 크로마하프 교육을 체계화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악기 판매실적이 실력과 동등시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은 잠시 국내를 떠나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선구자란 이런 것일까? 유 회장은 어깨에 크로마하프만을 달랑 매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노숙자처럼 자고 먹으며 크로마하프를 가르쳤다. 그리고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어깨에 매여 있는 크로마하프는 신선한 소리를 내어주었다.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끝없이 박수를 보내며 유 회장을 환영했고, 발걸음은 중국 길림성 훈춘예술학교로 향하게 되었다.
한국크로마하프의 산증인, 평생을 봉사와 사랑 실천
그러나 훈춘예술학교의 시설은 너무나 열악했다. 학교건물은 손가락이 얼어 붙어버릴 정도인 훈춘시의 강추위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유 회장은 "마치 학생들의 손가락이 열에 들뜬 듯 서른여섯 줄 현을 날아다녔다"고 표현했다. 그렇듯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향학열과 크로마하프 소리의 정수를 향한 유 회장의 열정은 국적과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를 뜨겁게 달구어 주었다.
기회였을까, 훈춘예술학교 전우주 교장의 도움을 받은 유 회장은 학교에서 못 다 피운 자신의 열정을 한국으로 돌아가 쏟아 붓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한·중 문화예술단과 유유프로젝트를 기안·실행하고 중국과 전 세계에 크로마하프 문화예술 수출을 하기로 결정했다.
유 회장은 일본에 가서 시장조사를 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악기제조에 관한 목재조사를, 필리핀에서는 법인체를 설립하는 등 또 다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희망과 가능성을 가슴에 품은 유 회장은 한국에 돌아온 후 크로마하프의 보급과 새로운 연주법 등을 연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한국크로마하프예술협회를 시작으로 진주, 창원, 부산, 춘천, 안산, 제주 그리고 중국과 일본, 미국, 필리핀 등 국내·외 각 지역에 크로마하프 예술단을 설립하였다. 또한, 한국노인복지봉사회예술단장, 한국문화예술홍보원녹색예술단장, 한중일교류협회 녹색평화예술단장, 독도사랑홍보예술단장, 중국 크로마하프예술협회 대표이사, DOOROO 크로마하프 연주단지휘자 등 20여 단체에서 주요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편, 크로마하프(Chroma Harp)란?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내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고, 1972년 가수 김홍철 씨가 해외에서 구입하여 매스컴을 통해 선보이고 연주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크로마하프 연주의 시작이다. 1978년 삼익악기에서 국내 최초로 크로마하프를 생산하여 수출하였으며, 1980년부터 국내에서도 시판하면서 우리나라 크로마하프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유경혜 회장은 대구 칠곡에서 태어나, 미국 콩코디아국제예술대학 경영학과를 수료하고 중국 길림성훈춘예술학교 음악교수를 역임했다. 특히 유 회장은 평생을 봉사와 사랑실천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외국에서의 공연 및 문화예술교류를 통해 한국크로마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렸으며, 그 공로가 인정되어 각종 수상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