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임창용 기자】=애지시선에서 송유미 시인의 신작 시집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를 2014년 12월 5일 발간했다.
송유미 시인은 서울 신당동 출생이며, 부산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 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을 통해 등단한 뒤, 시집으로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 <노도에서의 하룻밤(공저)> 등을 상재한 바 있다.
송유미의 이번 시집은 “기억의 현상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억은 인간 내면의 성서(聖書)이며, 현존하는 신비한 체험의 영상(映像)이다. 이러한 기억의 끄트머리까지 파고들면 누구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둠, 외로움, 그리움, 가난, 슬픔 등의 현현(epiphany)이 존재한다.
송유미의 시편들은 우리네 기억의 기저나 원점, 무의식의 원형, 선험적 세계를, 인간자체의, 사물 자체의 존재 증명(證明)으로 되돌려 놓는 시의 형식을 취한다. 즉, 세계의 모든 딱딱한 것들을 융해시켜 일체를 이루려는 태도를 취한다. 하여 불편하고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 속으로 안내하면서도 그 속에서 신산한 생명과 달빛 같은 환상을 동화적인 세계로 이미지화 낸다. 해서 그의 시편들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프지만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이런 미덕은 <미군부대 옆 염색 공장 지붕 위로 날아간 까마귀― 1947년 12월 8일생>, <1958년 3월 8일생―쥐똥나무>, <1948년 4월 13일생―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등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녀는 6. 25의 간접체험(이산가족 3세로서)들을 19-23 행 짧은 시행 속에,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면면을 대하드라마처럼 담아내고 있다.
이는 치밀한 구성과 이미지 등 능숙한 시적 문법에 있다. <연산동 심우도>, <중앙동 13번 출구의 사람들>, <그 섬, 파고다>, <석남꽃잠 대합실―꽃거지 아재> 등에서는 대상(사물)에 시인의 감정을 주입시키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내력과 원형을 돌려주는, 활물론(活物論)적인 수사 방식이다. 이 점이 이번 시집의 아름다운 특징이다.
한마디로 송유미 시인의 이번 시집의 밑그림은 우리네 삶의 실존적 연대이며 “통일에의 기원”에의 묵시록이다. 이러한 총체적 시적 개념 속에서, 나를 ‘나-너’ 따로 없는 우리네의 총체적인 ‘서정(정서)’의 토대를 건축한, 송유미의 시세계는 우리 시사의 진경의 한 면목을 잘 보여준다.
송유미 신간 시집은 두 갈래로 파악된다. 첫째 기억의 원형을 찾아내어 현재의 삶을 성찰한다. 둘째, 사회의 밑바닥 현상(인물) 등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풍부한 상상력에 의한 영상기법 사용이다. 해서 괴력과 같은 흡인력이 있다.
송유미의 시는 ‘시인’과 ‘화자’와 ‘대상(객체)’이 확연하지 않다. 즉 시적 자아와 세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세계내의 융화의 시관(詩觀)으로 우리네(변두리)의 이야기들을 산문적(동화적) 줄거리로 진행시킨다. 이에 서정성이 짙은 신선한 감각을 영상기법(혹 시나리오 기법)으로 이미지화한다. 이점이 송유미 시의 미덕이다.
왕래가 많은 지하철 역 주변 절 담장에 그려진 심우도(心牛圖)를 소재로 한 <연산동 심우도>의 경우, 나와 남, 중생과 부처가 그대로 하나가 되는 그 입전수수의 경지에 아주 자연스레 들어서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구걸하는 걸인이 시인인지 걸인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가 되어 있다. 이는 시인의 몸 안으로 삭히려 했던 의지의 흔적이자, 이를 해소시켜서 대상에 대한 철저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에의 탐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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