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단행한 가운데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진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추가 수습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안종범 정책조정·김재원 정무·우병우 민정·김성우 홍보수석 등 수석비서관급 이상 5명의 사표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비서관의 사표도 수리했다.
국정농단 사태 수습의 첫 걸음으로 여야 모두로부터 사퇴 압박이 집중된 인사들을 교체하는 인적쇄신을 단행한 것이다. 이미 29일 전국 주요 도심 시위에서는 박 대통령의 '하야', '탄핵' 요구가 봇물터지듯 나왔다. 민심 수습을 위한 조치를 미룰 경우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여당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청와대 내부에 반영된 결과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인사 발표 내용을 전하면서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각계의 인적쇄신 요구에 신속히 부응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 인사를 단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모진 개편 규모가 당초 예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시기도 늦어 성난 민심을 추스리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청와대도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진 뒤 첫 조치인 이번 인적쇄신에 여론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고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여야가 주장하는 국정 전면 쇄신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이번 참모진 교체 외에 '플러스 알파(+α)'를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여당이 요구한 '거국내각' 구성의 수용 여부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거국내각 구성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박 대통령에게 이를 요청키로 했다.
일반적으로 전쟁 등 비상상황에서 구성하는 거국내각은 특정 정파나 정당에 한정되지 않은 내각을 의미한다. 여야가 합의한 총리와 국무위원들로 내각을 꾸린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중심제인 현 체제에서 박 대통령에게 내치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권력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국회 예결위에서 "우리나라를 시험 대상으로 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국중립내각 제안에 대해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청와대가 거국내각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누가 국무총리를 맡고, 내각 분배는 여야 사이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권이 장기간 갈등을 빚을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철학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국무위원들끼리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다.
다만 최씨 사태가 확산일로에 놓이고 정권의 명운도 벼랑 끝에 몰리면서 청와대 기류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거국내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이기는 분명하지만 그대로 외면만 하다가는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여당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와 관련해 "대통령이 흔들림 없는 국정운영을 위해 다각적 방향에서 심사숙고하고 있으니 그 범주 안에 포함돼 있을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이게 '정치내각'이나 '야당내각'으로 될 우려도 많고, 그것 자체가 국민들을 위해서 좋은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거국내각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거국내각의 취지 자체는 우리도 포함해 숙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로 엎어진 개헌론의 불씨를 살리는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고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맡는 이원집정부제로 가기 위한 포석으로 거국내각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청와대는 구성방법이나 절차가 따로 정해진 게 없어 개념이 모호한 거국내각은 또다른 논란거리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아직까지는 '책임총리제'에 보다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거국중립내각의 취지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총리 임명을 여야 '합의'로 할 것인지 '협의'로 할 것인지조차 아직은 분명하지 않고, 내각 구성도 대통령이 중립적 인사를 선임하는 것인지 중립적 성향의 총리가 내각을 직접 구성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황교안 국무총리 교체를 비롯한 개각과 '책임총리제' 도입이 거론된다. 인사에 있어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는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중폭 이상의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이은 후속 인적쇄신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는 야당의 국정 참여도를 기준으로 볼 때 거국내각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이다. 하지만 야당도 수긍할 수 있는 책임총리를 선임하고, '국무위원 제청권'을 책임총리가 실질적으로 행사한다면 행사한다면 거국내각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이날 거국내각 촉구를 결정한 새누리당 최고위도 실질적으로는 책임총리제 도입에 보다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한 참석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거국내각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공감을 한 것"이라며 "폭넓은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경륜과 지혜를 갖춘, 또 야당이 수긍할 수 있는 그런 국무총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총리가 임명되면 그 분에게 내각 추천권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주고 여야를 아우르는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인적쇄신 할 때 거국내각에 준하는 쇄신을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밖에 박 대통령이 다시 한번 대국민사과에 나서는 것도 인적쇄신에 이은 추가 수습책 중 하나로 거론된다. 지난 25일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신속히 대국민사과에 나섰지만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들끓는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등의 형식을 통해 박 대통령이 보다 자세하고 진솔하게 최씨 의혹 전반을 직접 국민들 앞에서 설명하면서 사과와 더불어 국정쇄신에 대한 의지도 표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