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김충현 기자】= 정부의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기본이다. 정책의 시행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은 사회 안정의 주요 골자가 된다. 국민들이 정책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삶을 꾸릴 수 있게 해야한다.
그런데 사법시험과 관련해서 법무부가 보인 행태는 예측 가능성이나 사회 안정기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예측 가능성을 뒤집어 버려 정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로스쿨과 사시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로스쿨파(派)와 사법시험파로 나뉘어서 싸울 일은 더더욱 아니다. 로스쿨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위한 제도다. 사시는 과거 속으로 사라져야할 제도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사시 폐지 유예를 발표해 로스쿨 재학생들을 반발하게 했다. 사시 준비생들은 준비생들대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시를 유지해달라며 목을 매고 있다.
법무부의 사시 폐지 유예로 정책 갈등이 사회 갈등으로 옮겨갔다. 법무부는 사시 폐지 유예의 이유로 국민의 80% 이상이 사시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들었다. 하지만 설문 조사 결과와는 별개로 사시 폐지는 역사적 흐름이다.
과거에는 사시에 합격해서 판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는 것을 '개천에서 용 난다'고 비유했다. 그 시절에는 사시가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의 동아줄로 보이기도 했다. 흙수저를 탈피하는 유일한 수단이 사시 패스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개천과 용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사시 합격인원을 소수로 한정한 탓에 법조인들은 경쟁없이 특권 지키기에만 골몰해도 됐다. 전관예우 등 각종 비리가 난무하게 됐다. 로스쿨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여 배출되는 법조인 수를 늘리고 전국민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로스쿨 재학생들은 자퇴서를 제출하는 등 집단으로 반발하고 있다. 오는 23일까지 법무부의 대책 마련이 없으면 변호사시험 등록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격앙된 반응이다. 정부를 믿었다가 하루아침에 배신당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정책의 일관성은 이래서 중요하다. 믿음은 하루 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하루 빨리 사시 폐지를 확정지어야 한다. 법조인의 특권 시대를 마감하고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사시를 폐지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 말고 어느 곳이든 용이 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