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태로 靑 위기관리시스템 문제 여실히 드러나
【서울=STV】박상용 기자 =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문제가 붉어지며 청와대 위기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에 방문해있는 동안 벌어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으로 적지 않은 방미성과가 송두리째 날아갈 위기 상황인데도 청와대는 안이하게 인식하고 허술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에 청와대가 스스로 대형악재로 키웠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특히 청와대 참모진들의 기강해이를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행동은 성추행 의혹을 제쳐두고라도 징계감이다. 대통령의 순방을 수행 중인 대변인 신분으로 중요한 일정인 경제인 조찬 회동을 앞두고 7일(현지시간) 밤 늦게 술을 마신 것 부터가 잘못됐다. 방미단에 포한됐던 출입기자들과 관계자들은 다음날인 8일 새벽까지 술에 취한 모습의 윤 전 대변인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윤 전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이 귀국종용 여부를 놓고 진실게임을 벌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제인 조찬 행사를 마치고 영빈관에서 만난 이 수석이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말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이 수석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美의회 연설에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온 시점이라 100%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귀국하는 게 좋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귀국을 지시했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에 굉장히 쇼크를 먹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잠시나마 한솥밥을 먹었던 가족들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것도 홍보라인 계통의 부하와 상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의 공직기강을 점검하는 것이 임무인 민정수석실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2일, 곽상도 민정수석이 “귀국종용 여부는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없으므로 민정수석실이 나서서 따질 만한 것은 없다”고 말한 것을 그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청와대가 정말로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지시했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 사실은 이번 사태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럼에도 민정수석실은 귀국종용 여부가 양국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얼렁뚱땅 넘어가려한다. 이를 두고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부산대 정치학 김용철 교수는 “귀국종용이 사실이라면 범죄혐의자를 도피시킨 것과 마찬가지여서 독단적 결정에 의한 것인지, 청와대가 개입한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민정수석실에서 책임 있게 조사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점도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문부호를 품게 한다.
이 수석은 사건을 인지하고 26시간이 지나서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대통령이 보고를 받기 까지 방미 수행단은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사건을 숨기는 데만 급급했고, 결국 대책 없이 흘러간 이 시간이 사건을 더욱 키웠다. 서울에 남아 있던 허태열 비서실장이 관련 내용을 전해 듣고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난 10일 이 수석이 청와대에 도착해 밤 늦게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셀프사과’ 논란이 가중되며 여론만 악화시켰다. 허 실장이 12일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이미 전날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으로 귀국종용 진실공방이 벌어진 뒤의 일이었다.
더욱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당초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과문에는 없던 이 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을 추가로 언급하는 등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대통령이 24시간 넘게 대변인이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지휘‧통제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통솔할 수 없으니 허 실장이 그런 것을 확실히 다잡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손질을 예고한데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청와대는 홍보수석실 개편을 비롯해 인적쇄신을 통해 위기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방위 공직감찰을 통한 공직기강 확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허 실장 역시 별도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 있을 중국 순방에 대비해 매뉴얼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청와대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지켜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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