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장(社會葬)은 국장·국민장 다음으로 예우를 갖추어 거행하는 장례로서, 정부에서는 절차와 방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으나, 비용 중의 일부를 보조하고, 고인의 업적을 감안하여 때로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사회장도 국장·국민장과 같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지만 의식·절차는 고인의 유언 혹은 유가족의 희망에 따르며, 고인이 특정종교의 신자일 경우 그 종교의식을 영결식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 사회장의 경우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 해당되기도 한 만큼, 대개 영결식 이후 운구 도중에 고인과 인연이 많았던 유서 깊은 장소를 통과하기도 한다.
22일 환송예배와 발인을 마친 후 남 전 총리를 실은 운구차는 영결식 전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를 지났으며 센터 앞에는 무역협회 직원 200여 명이 좌우로 도열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하고 생전의 높았던 뜻을 기리는 시간도 마련되어졌다.
삼성동 무역센터는 그가 협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건설계획을 마련해 임기 중 완공한 곳이어서 그로서는 가장 의미심장한 고별순례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장소는 그가 점 찍어둔 것인지도 모른다.
오전 10시 현충원에서는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거행됐다. 엄숙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고 그 와중에 애석해 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덕수 무역협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확고한 경제철학과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한국경제를 이끈 우리 시대의 거인이었다"고 하며 "탁월한 경제적 지도력과 혜안으로 경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조사에서 "우리는 한국경제의 거목을 잃었다"며 "개인의 이별을 넘어 한 시대의 종언을 맞았다"고 애도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남 전 총리는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14년 동안 공직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70년대 이미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갈등이 많던 시기에 성장기조정책을 총괄∙지휘하여 한국 경제의 산업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는 앞으로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최정은 기자 chjng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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