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을 이끄는 한국거래소가 신입사원 채용에서 자존심을 제대로 구긴 일이 발생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의 합격 통보를 받은 신입사원이 입사를 포기하고 한국증권금융을 선택하는 사례가 2년 연속 빚어졌기 때문이다.
증권을 담보로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자에 자금을 대출해 주거나 투자자예탁금을 맡아 운용하는 증권금융은 거래소와 달리 증권업계를 제외하고는 대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또 증권금융 임직원은 약 370명으로 790명인 거래소의 절반 수준에 불과, 과연 어떤 직장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실시, 지난 22일 합격자 38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필기시험을 시행하는 '금융 A매치'에 참여하는 금융 기관과 공기업이 절반가량으로 줄다 보니 경쟁률이 1년 전 50대 1에서 올해 40대 1로 줄었다. 하지만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는 와중이라 거래소에 입성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취업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런 가운데 거래소 신입사원 합격자 가운데 2명이 합격을 포기하고, 모두 증권금융 입사를 결정한 소식이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작년에도 거래소는 합격자 35명을 선정했고, 이중 한 명이 합격을 포기했다. 증권금융에도 동시에 붙자 증권금융을 택한 것이다.
두 기관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날 필기시험을 시행했는데, 이들 행운의 합격자들은 오전에는 거래소 필기시험을, 오후에는 증권금융 필기시험을 치르고 양 기관으로부터 모두 '러브콜'을 받았다.
증권금융은 지난 15일 신입사원 합격자 20명을 발표했으며 경쟁률은 올해 66대 1로 집계됐다. 거래소와 마찬가지 이유로 지난해 119대 1의 경쟁률보다는 줄어들었다. 입사일은 지난 26일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과거 거래소에는 증권업계 최고의 인재들이 앞다퉈 입사하려 했는데 동시 합격 신입사원이 최근 증권금융을 연이어 택하니 자존심이 상한다"며 "거래소가 과거 한때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연봉과 복지가 많이 삭감된 것과 달리 증권금융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근로조건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거래소와 증권금융은 현재 신입사원 초임 연봉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다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거래소 1억882만원, 증권금융 1억527만원이다.
거래소 본사가 2005년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에 위치한 증권금융의 입지 매력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밖에도 증권금융은 대외 노출과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 반해 거래소는 각종 이슈의 중심에서 부침이 잦다는 부담도 신입사원들의 증권금융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젊은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단순히 명성과 영향력이 있는 곳을 직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연봉, 복지, 안정성, 업무강도 등을 꼼꼼히 따져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