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고 전교생, 단원고 희생학생들 위한 추모묵념식 가져
【stv 김호승 대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5일째가 되는 날이다. 5월1일 오늘 현재 세월호 참사 사망자는 213명, 실종자는 89명이다. 전 국민들 누구 할 것 없이 이번 사건과 실질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죄의식을 느끼는 건 이번에 사고를 당한 부모에 대한 심리적 동질감, 연대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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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고 김용기 교장과 학생대표와 학부모임원들이 희생자들에게 분향 후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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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에 제주 수학여행을 항공편으로 간 부천 소재 원미고(교장 김용기)학생 대표와 김용기 교장을 비롯한 김중한, 정영필 두 교감과 학부모 대표 등 30여명이 부천시청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를 찾아 분향했다.
원미고는 또 5월1일 아침 조회 시 전 학년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1분간의 추모 묵념을 실시한다고 김용기 교장이 밝혔다. 원미고가 타 학교에 비해 적극적으로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원미고 2학년 420여명(인솔교사 포함)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바로 그 날 4월16일 아침 항공기(7시, 7시40분)편으로 제주 수학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물론 원미고는 김용기 교장을 비롯한 관련 교사들과 학부모 대표 등이 제주 수학여행지의 철저한 현지답사를 통해 준비를 확실히 하였으므로 사건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학생들의 안전 지도를 위해 숙소와 음식, 기타 일정에 포함되는 모든 것들을 일일이 김 교장이 스스로 점검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원미고 학생들이 대한항공편을 통해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원미고는 당연히 학교를 비롯한 학부모 모두가 제주수학 여행길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 350여명이 승선한 배가 침몰한 사건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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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고 학생대표들과 김용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각 부장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 임원들이 세월호 참사 분향소에서 묵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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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김용기 교장은 제주 현지 인솔 책임교사인 김중한 교감에게 전화를 걸어 인솔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의 안전지도에 만전을 기하고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강력히 지시하였다.
부천의 원미고 학부모들 역시 처음 다 구조된 것으로 알려진 세월호가 점차 침몰하면서 구조되지 못한 학생이 수백 명이라는 소식에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원미고와 김용기 교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가면서 학부모들의 걱정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던 중 최근 온라인 소통의 대세인 밴드(BAND)를 통해 제주 현지소식을 전하기로 하고 운영계획을 세웠다.
먼저 작년에 원미고 학부모 임원들이 만들어 놓은 '원미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원사모:회원 50여명)의 밴드를 활용하기로 하고 제주 현지 인솔 책임자인 김한중 교감에게 시시각각으로 학생들의 일정과 동태를 일일이 현장사진을 찍어 밴드(BAND) 게시판에 공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사모 밴드 회원들을 통해 제주의 학생들의 일정 하나하나를 현장의 사진과 함께 공지한 게시물을 수학여행중인 2학년 각 반,대표와 부대표에게 전달 필요한 학부모들에게 전화 또는 문자로 알려주는 형식으로 2학년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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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수학여행중인 원미고 2학년 학생들. 단원고 학생들의 사고가 없었다면 첫 날부터 일정을 같이 소화 할수 있었다. 사진은 김중한 교감이 학부모들을 위해 매 시간 밴드에 게시해 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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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 교장은 현지 학생들과 부모들이 상시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김 교장과 제주 현지의 김한중 교감의 수고가 400여 가정의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특히 실시간 공지한 제주 현지 사진은 김포출발 제주도착 공항 사진부터 숙소의 이모저모, 식당의 음식 종류와 청결사항 등이 사진 몇 장을 통해 모든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전체 학생들을 인솔하고 현장 책임을 맡고 있었던 김한중 교감은 학생들의 모든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귀찮고 힘들었을 터인데도 약 50여장의 사진과 현장 설명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큰 위안과 걱정을 덜어준 1등 공신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김용기 교장과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고 지시를 받고 현장 보고를 통해 가장 안전한 대책을 위해 애쓴 부분이 고스란히 김 교장의 입술 부르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를 수학여행지로 택한 일부 학교들이 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가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원미고는 교장과 각 인솔교사, 학부모등이 하나가되어 현지 정보를 공유 하므로 또 하나의 문화와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이처럼 분주히 움직인 2박3일 일정이 그다지 길지 않았음에도 부천에 있는 학부모와 학교 측은 소통을 통해 오히려 서로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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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제주수학여행을 간 원미고 2학년 학생 임원들과 김중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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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학부모 송 모 씨는 세월호 침몰 뉴스를 듣고 '바로 제주로 가기위해 차비를 하였다'는 말로 당시의 심정을 대신했다. 또 한 학부모 김 씨 역시 그냥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귀가 조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을 통해 다각도로 정보를 공유 하게 됨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현지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원미고 2학년 학부모와 1, 3학년 학부모 역시 이번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인해 모두 힘들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우리 원미고와 같은 날 제주수학 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들의 사고가 더 가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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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고 학부모 임원들이 분향 후 희생자들에게 전하는 말을 쪽지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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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4월30일 세월호에 함께 승선했던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구조되어 치료를 받고 있던 70명이 고대안산병원에서 퇴원 정부합동분향소에 분향을 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단 앞에 가자 말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혼자 살았다는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이었고, 정든 친구들과 사랑하는 선생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과 그리움이 배여 있는 눈물이었다.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생활하던 친구들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듯 영정과 위패를 번갈아 쳐다보며 하염없이 우는 모습에 주위를 숙연케 했다. 한 여학생은 자신이 들고 있던 국화꽃 한 송이를 차마 제단에 내려놓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동안 오열했다. 또 다른 여학생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 큰 소리로 소리 내어 흐느꼈다. 학생들은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듯 울고 또 울었다. 이들 70여명의 학생 모두는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가슴만 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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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향 후 조문객들이 희생자들에게 남긴 쪽지를 학생 대표들이 유심히 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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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지켜 본 부모들은 그런 자식의 어깨를 감싸며 같이 목 놓아 울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조문객, 자원봉사자 모두가, 학생들이 조문을 끝내고 돌아갈 때까지 한참 동안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서럽게 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날 분향에 나섰던 단원고 졸업생들 역시 분향소에 나와 후배들을 위로하며 한편에서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한 조문객은 졸지에 아디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냐 며 '우리 어른들이 죄인이다'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