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박상용 기자】윤석열 대통령은 이단아였다. 사법시험을 9번이나 봐서 통과할 정도로 외곬수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로 꿈이 컸을 윤 대통령은 검찰에 늦게 투신했고, 출세 가도를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2013년에 바뀐다. 국정원의 댓글조작 의혹을 수사하던 윤 대통령은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한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유권자는 윤 대통령을 호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은 중도 유권자까지 합류해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안겼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0.7%p(포인트) 차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신승했다. 가까스로 이긴 쪽은 안도의 한숨을 쉬겠지만, 진 쪽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은 선거에 진 사람들까지 포용해야 했으나, 이후 야당 지도자가 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범죄자 취급했다. 이 대표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하나 그를 야당 지도자로 호명한 지지자들의 마음도 상처를 입었다. 이들은 극렬하게 윤 대통령과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 비토를 외치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과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게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그럴수록 윤 대통령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좌고우면 하지 않는다’면서 정면돌파를 고집했다.
윤 대통령의 분명 방향성은 옳았다. 한·미·일 결속을 강화해 북한을 견제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통큰 양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호응하지 않았다. 이는 외교적인 면에서 비난을 받게 했다.
노동·교육·연금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이다. 윤 대통령은 이 세 가지를 해결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탄핵, 김 여사 특검, 감사원장·방통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 이슈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정치적으로 파국을 맞았다. 비상계엄 선포로 나라 안팎이 근심과 혼란에 휩싸였다. 정치력 없는 대통령의 민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