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인인 블레인 하든이 신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술한 <14호 수용소 탈출>은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바이블로 여겨진다.
그런 신씨가 지난 20일 방한 중인 유엔인권위원회 위원들에게 북한의 인권유린실태를 증언해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최소한 그걸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자리에 섰다는 신씨는 연세대 새천년홀에서 열린 유엔인권조사위원회 첫날 공청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수용소 시절로 돌아가 유년시절과 청년 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놨다.
그가 인권위원들을 상대로 끄집어낸 기억 속 아득한 첫 장면은 수용소 시절의 ‘공개처형’ 현장이었다. 수용소 측은 기물파손, 수용소 탈출 시도 등 다양한 죄목을 들어 일 년에 두 차례 중죄를 저지를 죄수들에게 공개적으로 총살형이나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는 동갑내기인 7세 여자아이가 밀 이삭을 몰래 주웠다가 나무 봉으로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은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작업용 미싱을 옮기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 기물파손죄로 손가락을 잘린 일 등을 담담히 회고했다.
배고픔에 쥐를 잡아 껍질을 벗겨 날 것을 그대로 잡아먹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는 수용소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사치에 불과했다.
신씨는 14세 때 그의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그의 눈앞에서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도 겪었다. 수용소 탈출 전날 부자간의 정을 기대하고 마지막으로 만난 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수용소는 이렇게 인륜마저 파괴하는 현대판 ‘원형감옥’이었다.
이날 그의 증언을 청취하던 다루스만을 비롯한 유엔 조사위원들은 때로는 심각한, 때로는 어두운 표정을 지을 만큼 유엔 인권조사위원회사 첫 번째 증인으로 채택한 신씨가 털어놓은 북한의 인권실상들은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은 그의 증언이 사실인지 되묻는 이들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대해 신씨는 “제가 족쇄에 묶였던 자국, 불에 탄 자국, 갈고리에 꿰인 자국, 철조망에 걸려 찢긴 자국이 다다”라고 담담히 답하며 “지금은 많은 걸 보고 느끼면서 알고 있다. 최소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게 인권이란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갈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나고 자란 14호 수용소에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자료와 정보 수집 등을 위해 지난 18일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오는 27일까지 국내에 체류할 계획이다. 조사위원으로는 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 위원장과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소냐비세르코 세르비아 인권활동가 등 3명으로, 이들은 21일 연세대 새천년홀에서 북한 인권 공청회 이틀째 일정을 이어간다.
위원들은 오는 9월 제24차 인권이사회, 제68차 유엔 총회에서 조사결과를 중간보고한 후 내년 3월 제26차 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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