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도 고온 화장로에서 일하는 ‘여성 1호 화장기사’ 이해루 씨
막무가내 민원이 온도보다 더 힘들어
힘들 때 논어 즐겨 읽어
선함 증명하고자 장례업계 왔다
장례는 애도 통해 사별자들 상처 치유하는 일
【STV 김충현 기자】화장시설의 화장로는 섭씨 1천 도를 오간다. 관(棺)과 시신을 태우기 위해 고온이 필요해서다. 너무 강한 열기에 화장기사들의 안경렌즈 코팅이 벗겨질 정도다. ‘한국 여성 1호 화장기사’ 이해루는 “온도보다 힘든 건 민원”이라고 말한다. 20대 초반에 장례업계에 뛰어든 이해루 기사의 경력은 20년을 훌쩍 넘겼다. 어려 보인다고 함부로 말을 하는, 나이만 많은 ‘까마득한 후배’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럼에도 이해루 기사는 장례는 의미 있는 일이고, 사별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상조장례뉴스>가 서울추모공원에서 일하는 이해루 기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편집자주>
-이해루 기사님은 ‘한국 여성 1호 화장기사’입니다. 이 무게감 있는 타이틀이 때로 중압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으신가요.(이하 <상조장례뉴스>)
“여성이 하지 않던 일을 처음으로 하면 여성을 대표하는 느낌이 있어요. 남성 직원이 뭔가를 못하면 그저 그 사람의 문제지만, 제가 실수를 하면 여성의 문제가 되고, 제가 버티지 못하면 다시 여성이 그 곳에 가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돼요. 여성들이 주로 하던 직업을 남성들이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래도 중압감이라기보다 당연히 해야 할 선배노릇이라고 느껴요.”
-화장로의 온도는 섭씨 1천도 내외입니다. 인간이 가까이하기 힘든 극한의 온도예요. 이 때문에 이해루 기사님도 안경렌즈 코팅이 벗겨지는 등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장로 내부 온도는 높지만 저희가 화장로 안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아요. 화장로 주변은 여름에 45도 정도까지 올라가요. 안경렌즈의 코팅이 자꾸 벗겨져서 라식수술을 했어요.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편이라 다른 직원들에 비해 고생이 덜한 편이에요.”
-온도 외에 화장 기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민원이에요. (장례지도사로) 장례식장이나 상조에서 일할 땐 유족들과 정도 나누고 감사인사도 받고 일하는 보람이 있었어요.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소소하게나마 뭔가를 해드릴 수 있는 권한도 있었죠. 그런데 이곳(화장장)에선 아무래도 유족들과 직접 대면하는 시간도 짧고, (일할 때) 인상이 차갑다 보니 오해를 많이 받아요. 원활한 화장 진행을 위해 통제를 하면 상조 직원이나 유족께서 민원을 넣을 때도 있어요.”
-상조 직원들이 무슨 민원을 넣나요?
“저희 나름대로 원활하게 화장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설 안내도 하고 일정부분은 통제도 해야 하는데, 제가 어려 보이니 기사 경력 초반에는 민원이 심했어요. 남성 직원들은 삿대질하고 거친 말을 해도 민원이 안 나와요. 저 같은 경우는 조금만 통제를 해도 민원이 들어와요. 고별실에서 안내를 할 때도 저희 직원들이 안내하는 말들을 (상조 직원들이) 기억하시는데, 저희 직원들이 안내하는데 말을 자르거나 가로채요. 그런 부분들을 제지하면 사별자들 앞에서 어린 여직원에게 무시당했다고 기분 나빠해요. 기분이 상하면 태도가 나쁘다면서 민원을 넣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별자들에게 오해하게끔 설명하기도 하고요. 사실 (경력 면에서) 제가 일을 오래 했는데…. 이쪽 업계는 나이가 어리거나 동안이면 불리한 게 있어요.(웃음) 제가 18살 아들이 있다고 말을 하면 깜짝 놀라셔요.”
-이해루 기사님은 커리어를 여성 장례지도사에서 화장기사로, 사람들의 편견에 도전하는 경로를 찾아 걸어오셨습니다. 기사님의 커리어에 자신의 도전적 태도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람들의 편견에 큰 관심이 없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제 도전적 태도는 저 자신한테만 적용돼요. 어릴 때는 사진이나 건축 같은 걸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기도 했고 천주교 집안이라 제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면 이기적으로 보시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삶은 별로 살고 싶지가 않아서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어요. 저 자신에게 스스로의 선함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장례 일을 선택했고, 그 이후에도 현실적인 상황에 (저를) 맞춰왔죠.”
-스스로의 선함을 증명하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그 당시의 저에게는 이미 죽어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에게 예를 다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무의미하게, 또 한편으로는 극한의 선함으로 느껴졌어요. 제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차선책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다른 사람이 저를 오해하거나 왜곡해서 손가락질할 때 스스로의 선함에 대해 지금처럼 굳건하게 믿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저 자신의 시선이 두려워요.”
-결국 장례업계에서 일하면서 선함을 스스로 증명한 거 아닌지요.
“계속 고민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이제는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결국 사람은 선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제가 선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생긴 정도죠.(웃음)”
-기사님이 장례업계에서 일을 처음 시작한 20년 전과 지금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논어(論語)’에 나오는 ‘상제를 행할 때도 겉치레에 치우치느니 차라리 진심으로 슬퍼함이 낫다’라는 구절을 20년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돼요. (장례를) 화려하게 하는 것보다 정말 슬퍼하고 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더 화려해지긴 했지만 애도는 덜한 것 같아요.”
-논어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논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장례 일이) 잠을 깊이 못 자는 일이잖아요. 20대 초반에 수면장애가 생기면서 꿈을 많이 꿨는데 꿈에 논어가 많이 나왔어요. 그때 장례 노동은 쉬는 시간도 부족하고, 자기 시간이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논어를 보면서 버텼어요.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상황에 휘둘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도,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철학책을 읽고) 노력해요.”
-인상 깊게 읽은 책 3권만 추천 해주세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희정의 ‘죽은 다음’.”
-기사님은 2019년에 출간된 '나로서 아름다워지기'(드림워커 펴냄)*에 공동저자로 참여해 놀랍도록 솔직하게 개인사를 쓰셨습니다. 마치 피로 찍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글 같은데요. 기사님이 내밀한 속사정을 감추고 직업에 대한 내용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과감하고 절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저에겐 감정보다는 명분과 근거가 중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정들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아요. 내면에 큰 댐을 건설해두고 그 안에 물이 가득 차면 수문을 열어 내보내야 하는데 글쓰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해루 기사는 '나로서 아름다워지기'에 자신이 장례업계 입문 계기부터 일하는 과정, 밥벌이나 육아의 어려움 등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썼다.)

“성격이 내향적이고 수동적이라서 누군가 쓰자고 하면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글을 읽히기 위해 쓴다기보다는 그냥 버티고 다짐하기 위해 쓰는 거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직접 염습하셨습니다. 이는 장례지도사로서도 특이한 경험이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요.
“(장례지도사) 일을 하면서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는 걸 알았고, 가끔 상상하면 그 순간 제가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당황했어요. 감정의 동요 없이 제가 직접 염습하고 화장해서 분골까지 마치니 어머니 친구분께 독하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게 좀 상처가 됐죠. 여동생도 많이 힘들어하면서 (슬퍼 보이지 않는) 저를 나무라기도 했고요. 그 후로 2년 정도 울지 못해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상조·장례업계 종사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강 작가가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고, 기록노동자 희정의 책 ‘죽은 다음’에도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심리학적 측면에서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은 엄청난 사건이잖아요. 사별자들의 단단한 심리적 장벽이 무너질 때 장례를 잘 치르면 애도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애도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나중에 상실을 겪을 때 스스로 치유할 힘을 얻게 될 거고, 그게 죽은 자(고인)와 산 자(장례인)가 함께 산 자(사별자)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수익을 고려하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의 영역까지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또 현장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이 모쪼록 건강에 유의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