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과 故박정희 대통령 사주
지난번 김재규의 차복전파(車覆全破)를 이야기 했다. 오늘은 그날에 운명을 달리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주를 풀이해 봐야겠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양력 1917년 11월 14일 인시에 태어났다
사주명조로 풀이하면 정사(丁巳)년, 신해(辛亥)월 , 경신(庚申)일, 무인(戊寅)시로 구성되어, 다시 말하면 사주팔자 8자가 구성 된다.
사주 8자중에 위에 있는 자는 천간(天干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 임(壬),계(癸)로 10천간이 있다,
밑에 있는 지지(地支)에는 자(子:쥐),축(丑:소),인(寅:범),묘(卯:토끼),진(辰:용),사(巳:뱀),오(午:말),미(未:염소,)신(申:원숭이),유(酉:닭),술(戌:개),해(亥:돼지) 라는 12지지로 구성된다.
이 지지(地支)속에 인신사해(寅申巳亥), 자오묘유(子午卯酉), 진술축미(辰戌丑未) 로서 크게 3가닥으로 묶는다.
이 사주는 지지(地支-자, 축, 인 묘하는12지. 흔히 쥐띠, 소띠 하는 것)에 인신사해(寅申巳亥-글자의 순서는 상관없다) 4충(四沖)과 4맹지(四孟支-4계절의 시작하는 달)로 이루어 졌다.
인사신(寅巳申) 삼형(三刑)을 이루는 자는 남의 생사여탈권을 쥐던지 아니면 죄를 지어 남으로부터 생사에 관한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데 이 사주는 인사신(寅巳申) 형(형벌刑)에서 사(巳)를 더하여 刑을 없애고 제왕의 사주가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주도 인신사해를 전비한 사주였다고 한다.
고서(古書) 명리정종(이 책은 편자와 편찬 시기는 미상이나“적천수”와“연해자평”의 이론을 설명하고 사람들의 사주를 적용시켜 그 입론을 뒷받침 해주었다.)에“4충(四沖)에 4맹격(四孟格)이면 남자이면 삼공(三公)의 반열에 오른다.”했고, 삼명통회(三命通會)이론에는 제왕격에 대해‘대저 생물이 크게 자라면 반드시 폭우와 바람에 꺽이는 것과 같이, 크게 창성했다가 쉽게 꺾이게 된다. 시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니 때를 얻으면 영구히 대창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일찍 죽는 사람이 많다’고 적어 놓았다.
경금(庚金)이 신금(申金)을 깔고 앉아서 분위기가 매섭고 차다 살기와 카리스마가 보이고 자기주관과 고집이 강하고 인신충(寅申沖), 사해충(巳亥沖) 하여 금(金)기운이 뭉쳐 결국 총칼로서 제왕이 된 사람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풀이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정관(正官) 화(火)로서 금기(金氣)를 다스린다.
74년 갑인(甲寅)년 운세에는 강력한 금(金)에 의해 군겁쟁재[群劫爭財 (군겁(群劫)이란 도당(徒黨)을 말하고 쟁재(爭財)라 함은 서로 재(財)를 다툰다] 괘가 나오는데 이를 풀어보면 다음의 사건과 연결된다.
74년 8월15일 광복절,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는 날 이였다.
복잡한 서울거리, 교통의 혁신을 가져온 금(金)기의 산물,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생긴 것이다.
금기(金氣)라 함은 물론 총칼을 말하기도 하지만 지하철 기차를 말할 수도 있다.
운명의 그날 광복절 경축 기념식이 국립극장에서 열리고 있었고,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중요한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조국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조용한 가운데 박대통령의 약간 쉰듯 한 목소리를 깨트리고 울려 퍼진 3발의 총소리.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의 흉탄에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것이다.
강한 경금(庚金)이 갑인(甲寅: 큰나무로 불태워져)으로 녹아져 내린다. 라고 풀이 된다.
이로써 육여사가 저격 사망 한다.
그로부터 5년후.
79년 갑진(甲辰)의 대운(大運)(대운은 사주를 10년씩 묶어 보는 방법)을 맞는다.
갑진(甲辰) 이라하면 안타깝게도 육여사 저격사건 때처럼 갑(甲-큰나무)은 큰불(火)을 만들고 진(辰)이라함은 금(金)의 묘(무덤墓)가 되는 자 이므로 권위는 높아지나 역시 군겁쟁재로 노리는 이가 많아지고 결국 79년 10월 26일 술(戌)시 큰불에 금(金)은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당하게 된다.
박대통령의 시해사건에 관한 조선일보의 기사내용을 인용해 본다.
『그날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62세의 대통령 박정희는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돌아오다가 서울 상공을 한 바퀴 돌게 했다.
마치 그가 지난 18년 동안 이뤄놓은“한강의 기적”을 눈에 담아두려 하는 것 같았다.
전날 대통령은 청와대 뜰을 거닐다가 낙엽하나를 주어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오동 나무 낙엽 하나가 가을이 깊어 감을 알린다고 했는데...”
제9대 대통령 취임식 다음해인 1979년은 유신체제의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해 8월에는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폐업조치에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9월 뉴욕 타임스사와의 회견에서“박정희에 대한 지지 철회를 미국에 요구 했고 여당은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 결의안을 국회에서 통과 시켰다. 16일 부산, 마산에서 대규모 유신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18일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 됐다. 유신 반대 시위 현장을 지켜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강경 진압을 고집한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큰 반감을 품게 됐다.
26일 오후 6시 5분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안가는 허물어 졌고, 현재 무궁화동산)에서 김재규, 차지철과 함께 만찬 자리에 앉았다. 40분쯤 지나 자리를 빠져나온 김재규는 부하들을 불렀다.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각하까집니까?”
김재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7시 40분, 박정희가 합석한 가수 심수봉의 반주로 모델 신재순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김재규는 욕설을 내뱉으며 차지철의 팔에 권총을 발사 했다.
“뭣들 하는 거야!”(박정희)
“경호원 ”차지철은 소리 질렀다.
김재규는 4, 5초 동안 머뭇거리다 정좌한 채 눈을 감은 박정희의 가슴에 총을 쐈다. 밖에서는 김재규의 부하들이 대기실과 주방에서 경호원들에게 총을 난사 했다.
마침 총이 고장 난 김재규가 밖으로 나간 사이 심수봉과 신재순이 박정희를 부축했다.
“각하 괜찮습니까?”
등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박정희는 그대로 앉은 채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괜찮아”잠시 후 부하의 권총을 빼들고 와 차지철을 쏜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 50cm까지 총을 들이 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확인사살 이였다.
한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1979.10월 조선일보 참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성명을 측자법(側子法)로 풀이 하면 박(朴)은 열십(十),여덟 팔(八),점복(卜),이루어져 18년을 의미하고 정(正)은 한일(一)에 그칠 (止)가 합쳐져 있으니 18년 한번으로 끝내고 유신헌법으로 재임하려고 하는 것을 금하라는 뜻이다. 희(熙)자는 신하(臣)과 뱀(巳)에다 불(灬)가 합쳐진 字로 정사(丁巳)년 뱀띠생 몸(己)이 기미(己未)년에 불을 맞는다로 파자로 해석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이르기를 이상(履霜)하면 견빙지(堅氷之)라 하니 신시기군 (臣弑其君)하며 자시기부(子弑其父)가 비일단일석지사(非一旦一夕之事)라,
기유래자(其由來者) 점의(漸矣)니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된다하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이 하루 저녁에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원인은 이미 잉태되어 있었느니라.
생각해 본다.
도계 박재완 씨가 육여사를 통하여 육여사 사주와 박대통령,
그리고 김재규, 차지철 그 모두의 사주를 전부 감명 했는데 위 사실을 밝히지 않음은 천기누설 때문인가 하는 지울 수 없는 의문이다.
박정희 이후에 태어난 박정희 보다 더 멋있는 제왕격 사주의 소유자가 우리나라에는 한명 더 있다.
다음 글에서 이 사람의 사주를 소개 하겠다. < 계속 >
한국역리학회 연구원
http://blog.naver.com/lovesa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