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금 규제 강화에 상조업계 긴장…“소비자 보호와 산업 생존 함께 봐야”

경영난에 폐업·매각 고민하는 업체도…내부통제 비용까지 늘면 시장 양극화 우려

 

【STV 박상용 기자】상조업계가 선수금 운용과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잇단 제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비자가 장기간 납입한 선수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이미 자금난과 영업환경 악화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 비용까지 더해지면 산업 전반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선불식 할부거래에서의 소비자보호 지침’ 개정안에는 선수금 1000억원 이상인 상조회사가 선수금운용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선수금을 운용할 때 안정성과 유동성, 수익성 등을 검토하고 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소비자 자산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상조업계도 선수금 보호와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소비자가 장례 등 서비스를 이용하기 훨씬 전부터 장기간 돈을 납입하는 업종인 만큼 선수금 관리가 시장 신뢰의 핵심이라는 점을 업계 역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규제의 강도와 적용 방식이다.

 

상조회사는 단순히 돈을 받아 운용하는 금융업체가 아니다. 회원을 관리하면서 장례가 발생하면 장례지도사와 의전인력, 차량, 장례용품 등을 투입해 실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산과 콜센터, 교육, 영업조직 유지에도 지속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에 준하는 내부통제 장치를 일률적으로 요구할 경우 상조업의 서비스업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상조업계에서는 경영난으로 폐업이나 매각을 고민하는 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회원 모집 비용과 인건비, 전산·관리비 등 고정비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규제 대응을 위한 추가 인력과 시스템 구축 비용까지 더해지면 경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업체가 더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금운용심의위원회 운영을 위해 별도 규정을 만들고 회계·법률·재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면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형업체는 이미 자산운용 조직과 내부 심의체계를 갖춘 경우가 있지만,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업체는 전문인력을 새로 확보하거나 외부 자문을 받아야 해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개정 할부거래법에 따라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신용공여 제한 등 자금 운용 규제도 강화된다. 소비자 선수금이 특정 주주나 관계회사로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지만, 업계에서는 부당한 자금 유출과 정상적인 사업 투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세부 기준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규제 강화가 자칫 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충분한 자본과 인력을 갖춘 대형사는 추가적인 내부통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중견·중소업체는 동일한 비용 증가가 생존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 대응 능력 자체가 시장 퇴출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소비자 보호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건전하게 영업해온 업체까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조업계는 이미 상당한 구조조정을 거쳐 업체 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시장 규모와 선수금은 커졌지만 사업자는 계속 감소하면서 대형사 중심의 시장 재편도 빠르게 진행돼 왔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일률적인 비용 부담이 추가되면 규모가 작은 회사부터 사업을 포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 폭도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선수금 관리 제도는 업체 규모만이 아니라 재무건전성과 기존 내부통제 수준, 실제 자금 운용 위험 등을 함께 살펴 차등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이미 자체 심의체계를 갖춘 회사에는 중복 규제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회사에는 충분한 준비기간과 현실적인 운영 기준을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조산업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선수금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할 상조회사의 경영 안정성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부실과 사익편취는 엄격히 차단하되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상조회사의 투자와 서비스 경쟁력까지 위축시키지 않는 정교한 규제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