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고위직·올림픽 영웅 출신의 참담한 피해자 인식
【STV 박상용 기자】피해자를 보호하겠다며 국회로 불러놓고, 그 피해자가 당한 범죄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국민의힘 서범수·진종오 의원의 발언은 단순한 실언도, 분위기를 풀기 위한 가벼운 농담도 아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웃음 소재로 소비한 두 정치인의 인권 감수성을 의심하게 한다.
두 의원은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주최한 ‘보완수사 금지, 지옥문이 열렸다’ 간담회를 앞두고 부적절한 대화를 나눴다. 서 의원이 “돌려차기 한 번 하죠?”라고 하자 진 의원은 웃으며 “저는 발보다 손을 잘 씁니다”라고 받아쳤다.
‘부산 돌려차기’는 영화 제목이나 스포츠 기술의 이름이 아니다. 귀가하던 여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뒤쫓아온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강력범죄다.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오랜 공포를 남긴 사건을 국회의원들이 서로 웃기 위한 말장난에 사용했다.
먼저 농담을 건넨 서범수 의원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그는 울산지방경찰청장과 초대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 경찰대학장을 지낸 경찰 고위직 출신이다. 범죄가 피해자와 가족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경력이다. 그런 인물이 피해 사건을 먼저 농담판에 올렸다. 몰라서 한 말이라고도, 경험이 부족해 저지른 실수라고도 변명하기 어렵다.
진종오 의원의 대응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부적절한 말을 즉시 제지하기는커녕 자신의 사격 경력을 끌어와 농담을 완성했다. 진 의원은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권총 종목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국민의 응원과 존경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국회에 들어온 인물이 “발보다 손을 잘 쓴다”는 말로 폭력의 이미지를 덧붙였다. 재치도 유머도 아닌 저급한 말장난이다. 진종오 의원 경력
서 의원은 피해 사건을 꺼냈고 진 의원은 웃으며 받아쳤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두 사람 모두 한 인간이 겪은 공포보다 자신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을 앞세웠다.
피해자가 당시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는 사실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당사자가 듣지 않으면 그의 상처를 웃음 소재로 사용해도 되는가. 피해자 앞에서는 보호와 정의를 말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사건을 희화화했다면 그날 간담회에서 외친 위로의 진정성부터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성폭행 목적이 확인되고 가해자의 형량이 징역 12년에서 20년으로 높아지기까지 수사와 재판 과정을 견뎌야 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참혹한 경험을 다시 꺼내 국회에서 증언했다.
그런 피해자를 초청해 놓고 사건 이름을 농담에 이용했다. 피해자의 용기는 보완수사권 존치를 위한 정치적 주장에 활용하면서, 정작 그가 감당한 고통은 행사 시작 전 웃음거리로 취급한 셈이다. 이를 피해자 보호라고 부를 수는 없다. 피해자의 상처를 정치적으로 소비한 것에 가깝다.
두 의원은 논란이 확산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정형화된 사과문 몇 줄로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발언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피해자에게 사죄했을지 의문이다. 뒤늦은 사과는 책임의 출발점일 뿐, 이미 드러난 피해자 인식까지 지워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 한동훈도 친한계라는 이유로 감싸면 정치적 책임 피할 수 없어
서범수 의원은 지난달 국민의힘 울산시당위원장에 선출됐다. 앞으로 1년간 지역 당 조직을 이끌고 2028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책임 있는 자리다. 피해자의 고통을 농담으로 삼은 사람이 지역 정당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국민의힘은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과문을 냈다는 이유로 시당위원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두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도 물어야 한다. 서범수 울산시당위원장 선출
진종오 의원은 이미 6·3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아닌 무소속 한동훈 후보를 지원한 문제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기존 사안과 별개로 이번 피해자 희화화 발언도 윤리적 책임을 따져야 한다. 올림픽 영웅이라는 과거의 명예가 국회의원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덮어주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진종오 의원 징계 절차
이번 파문은 간담회를 주최한 한동훈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범수 의원은 2024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체제에서 당의 조직과 재정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 발탁됐다. 진종오 의원도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앞두고 영입했고, 이후 당대표 선거에서는 러닝메이트로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했다. 두 사람은 우연히 행사에 참석한 의원이 아니라 한동훈이 직접 선택하고 중용한 친한계 인사들이다.
서범수 의원의 친형인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지난 6·3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무소속 한동훈 후보 캠프의 명예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한동훈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천392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는 데 힘을 보탠 핵심 조력자였다. 서범수 의원과 한동훈의 관계를 평범한 동료 의원 사이로만 보기 어려운 배경이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 결과와 서병수의 역할
정치 지도자의 원칙은 상대편을 공격할 때가 아니라 자기 사람의 잘못을 처리할 때 드러난다. 다른 진영 정치인의 막말에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친한계 의원들의 언행에는 침묵한다면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한동훈은 간담회에서 보완수사권 폐지가 범죄 피해자들에게 ‘지옥문’을 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곁에 세운 두 의원은 피해자가 이미 지나온 지옥을 농담으로 만들었다. 이 모순을 외면한 채 정부와 여당만 비판한다면 피해자 보호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서범수·진종오 의원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두 사람을 계속 핵심 우군으로 품은 채 사과문으로 사건을 정리하려 한다면 피해자의 아픔보다 친한계 결속을 앞세웠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힘도 이번 사안을 당 윤리기구에 회부해 책임을 따져야 한다. 특히 서범수 의원의 울산시당위원장직 유지가 적절한지 검토하고, 진종오 의원의 피해자 희화화 발언 역시 별도의 판단 대상으로 다뤄야 한다. 다른 정당 의원이 같은 말을 했더라도 사과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했을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서범수·진종오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잘 다듬어진 사과문이 아니다. 왜 피해자가 겪은 끔찍한 폭력을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책임이다. 아무런 정치적 불이익 없이 다시 피해자 보호를 말한다면 국민에게는 위선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존엄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이 어떻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두 의원은 이번 발언으로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감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스스로 의문을 불러왔다. 국민의힘과 한동훈이 이를 엄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비판은 서범수·진종오 의원에게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의원은 보완수사권 폐지가 범죄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제도 시행 전 경찰 수사가 부족할 경우 이를 실질적으로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