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박상용 기자】상조업계를 둘러싼 할부거래법 개정 논의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 보완이라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선수금 운용과 지배주주·특수관계인 거래 제한을 어느 범위까지 적용할지를 두고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5년 국회에 발의된 할부거래법 일부개정안 6건은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사안으로,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상조업체의 자금 운용과 계열사 거래, 내부통제 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허영, 박상혁, 강준현, 민병덕, 추경호, 강민국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할부거래법 일부개정안이다. 법안별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된 방향은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의 선수금 운용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과의 부당 거래를 제한하며, 소비자 정보공개와 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데 있다. 선수금 보호라는 명분은 분명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위축되지 않도록 입법 기준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정안에는 선수금 운용 원칙 명문화, 투기성 자금 대출 제한, 채무보증 및 담보 제공 금지, 지분 매입 목적 대출 금지, 지배주주 대상 신용공여 제한, 일정 규모 이상 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보고 의무 확대 등이 담겨 있다. 일부 법안은 준법관리인 제도 도입, 소비자 권익 보호 정보시스템 구축, 회계감사 절차 구체화, 폐업 공고 의무, 공제조합 감독 강화 등 내부통제와 사후 관리 장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법안은 상조업체가 소비자로부터 장기간 납입받은 선수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상조상품은 소비자가 먼저 대금을 납입하고 장래에 장례서비스나 전환서비스를 제공받는 구조다. 사업자가 폐업하거나 등록이 취소되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수금 보호와 사업자 건전성 관리는 상조산업의 신뢰와 직결된다. 업계 역시 소비자 신뢰를 해치는 부실 업체 관리와 피해 예방 장치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쟁점은 선수금 운용 제한이 실제 현장에서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느냐다. 상조업체는 장기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장례지도사 인력 운영, 장례용품 확보, 고객관리 시스템 구축, 전산망 개선, 장례행사 인프라 확충 등에 지속적으로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 전환서비스 개발, 계열사와의 용역 거래, 장례식장·콜센터·물류망 활용, 안정적 자산 운용도 장기 서비스 이행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사업 활동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선수금 운용 제한과 특수관계인 거래 규제가 넓게 해석될 경우, 부당 내부거래와 정상적인 사업 거래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조업은 일반 제조업이나 유통업과 다른 장기계약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입자가 늘수록 외형은 커지지만, 동시에 회계상 선수금 부채도 함께 증가한다. 선수금은 소비자에게 장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의 표시이자, 서비스 이행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재원이다. 이 때문에 선수금 보호 장치를 강화하더라도 상조업의 특수한 회계 구조와 장기 서비스 이행 구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험 자산 운용이나 투기성 투자, 지배주주 사익 추구성 거래와 정상적인 자산 운용을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업계의 입장이다. 사옥, 교육시설, 고객관리센터, 장례 관련 인프라, 물류 거점 등 사업 운영과 연결되는 부동산·설비 투자는 상조업체의 서비스 기반을 넓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장기계약 산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통해 재무 기반을 보강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투자 대상이 부동산인지 여부가 아니라 투자 목적과 위험성, 절차의 투명성이다. 고위험 개발사업, 무리한 지분 투자, 특수관계인 지원성 거래, 회사 재무를 해칠 수 있는 담보 제공이나 채무보증은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절차와 이사회 판단, 적정한 가치 평가, 투명한 공시를 거친 안정적 자산 운용까지 과도하게 묶을 경우 상조업체의 재무 전략과 장기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은 투자 금지의 확대가 아니라 위험 운용과 정상 운용을 구분하는 정교한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은 상조업계가 민감하게 보는 대목이다. 현재 상조업체들은 장례식장, 장례용품, 의전 인력, 콜센터, 전산, 여행, 렌털, 웨딩,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단순 장례서비스를 넘어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케어 산업으로 확장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이 과정에서 계열회사나 관계회사와의 용역계약, 상품 공급, 인프라 공동 활용은 서비스 표준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경영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상조업계 한 관계자는 “선수금을 단순한 부채나 잠재적 위험 자금으로만 보면 상조업의 장기계약 구조와 서비스 이행 책임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며 “부당한 자금 유출은 엄격히 막아야 하지만, 장례 인프라 투자와 고객관리 시스템 개선, 전환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정상적인 자금 운용까지 막히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서비스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계열사 거래 전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보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며 “거래 가격이 적정한지,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있는지, 회사 재무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등을 기준으로 부당 거래와 정상 거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조업이 라이프케어 산업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계열 인프라와 전문 자회사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산업 발전을 가로막지 않는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소 상조회사에는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대형사는 회계, 공시, 준법관리, 내부통제 조직을 이미 갖춘 곳이 많아 제도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지역 기반 중소업체는 이사회 절차 정비, 특수관계인 거래 점검, 공시·보고 체계 구축, 회계감사 대응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규제 준수를 위한 고정비가 늘어나면 영업망 유지와 서비스 개선에 투입할 자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30일 2026년 1분기 선불식 할부거래업자 주요 정보 변경 사항을 공개했다. 올해 1분기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2개사가 등록취소되고 1개사가 신규 등록돼 정상 영업 중인 업체 수는 직전 분기 77개사에서 76개사로 줄었다. 업계 변동성이 이어지는 만큼 소비자 보호 장치와 정상 사업자의 경영 부담을 함께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폐업 가능성도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개정안 자체가 정상적인 상조업체의 폐업을 직접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예기간이 충분하지 않거나 세부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공시·보고·내부통제 의무가 한꺼번에 강화되면 일부 중소업체는 사업 지속성을 고민할 수 있다. 자금 운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지고 계열사 거래에 대한 법적 리스크가 커지면 신규 서비스 투자나 사업 확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경우 시장이 대형사 중심으로 더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부실 업체를 걸러내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 영업해온 중소 상조사까지 과도한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되면 소비자 선택권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상조계약은 장기간 유지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는 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존속하며 약속된 서비스를 끝까지 제공할 수 있는 환경과 함께 설계돼야 한다.
상조산업에 필요한 것은 규제와 진흥의 균형이다. 선수금의 사적 유용, 허위 공시, 소비자피해보상계약 미체결, 부당 내부거래는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한 가격과 정상적인 계약 조건에 따른 계열사 거래, 장례 인프라 확충을 위한 투자, 소비자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금 운용, 안정적 재무 기반을 위한 자산 운용은 합리적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특히 업체 규모와 준비 여건을 고려한 단계적 적용, 명확한 공시 기준, 정상 거래와 부당 거래를 가르는 구체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할부거래법 개정 논의는 상조산업이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제도권 산업으로 더 단단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산업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중소 상조회사의 부담 확대와 시장 집중 심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선수금 보호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정상적인 사업자의 서비스 투자와 경영 지속성을 함께 살리는 정교한 입법 설계가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