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박상용 기자】일본에 있던 조선시대 유물 2건이 민간 기증을 통해 국내로 돌아왔다. 이 가운데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사대부 무덤에 넣었던 묘지 자료로, 당시 장묘문화와 고인 기록 방식을 살필 수 있는 실물 유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김창원·김강원 형제가 기증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공개했다. 두 유물은 일본 고미술 시장 등을 거쳐 국내로 환수된 문화유산으로, 기증자들의 판단에 따라 공공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번 공개에서 장묘 분야와 직접 연결되는 유물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다. 묘지는 무덤 안에 함께 넣어 고인의 생애와 가문, 행적, 매장 장소 등을 남기는 기록물이다. 오늘날의 묘비나 봉안 기록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사후 공간의 의미를 설명하는 역할을 했던 셈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문신 이진검의 묘지로, 1745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물은 청화 안료로 글을 적은 백자판 10점으로 이뤄져 있다. 앞면에는 이진검의 생애와 관직, 가계, 장례 관련 내용이 담겼고, 뒷면에는 묘소의 위치와 방향 등 무덤 조성에 필요한 정보가 기록됐다.
이 유물이 갖는 가치는 단순히 오래된 도자기라는 데 있지 않다. 조선 후기 상류층이 고인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묘소를 어떤 의미의 공간으로 남겼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묘지는 고인의 이름과 이력을 적는 데 그치지 않고 가문의 역사와 장례 절차, 사후 공간에 대한 인식을 함께 담아낸 자료였다.

특히 백자판을 사용한 점은 기록의 지속성을 염두에 둔 장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종이나 목재보다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재료에 고인의 생애와 묘소 정보를 남김으로써, 후손들이 고인의 존재와 가문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뒷면에 묘소의 방향과 위치가 적힌 점은 당시 묘역 조성과 풍수 인식이 장묘문화 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글은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수가 짓고, 글씨는 이진검의 아들인 이광사가 썼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예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글씨는 행초서가 많은 편이지만, 이번 묘지는 예서로 쓰였다는 점에서 서예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친의 묘지에 아들이 직접 글씨를 남겼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장묘문화에 담긴 가족적 의미도 함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묘지가 한 인물의 생애 기록을 넘어 조선 후기 사대부 가문의 장묘 관행과 기록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한다. 고인의 이력과 가계, 장례 관련 내용, 묘소 정보가 백자판 여러 점에 나뉘어 남아 있어 당시 묘지가 어떤 구성과 형식을 갖췄는지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공개된 순종예제예필현판은 1892년 경복궁에서 열린 궁중 연회와 관련된 왕실 유물이다.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가 사대부 가문의 사후 기록문화를 보여준다면, 이 현판은 왕실 의례와 효심을 담은 유산이라는 점에서 함께 공개된 의미가 있다.
두 유물의 국내 귀환에는 형제 기증자의 결단이 있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 씨는 옛 글씨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광사의 글씨가 담긴 묘지를 접했고, 개인 소장보다 국가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순종예제예필현판은 동생 김강원 씨가 일본 고미술 시장에서 발견해 기증했다.
이번 환수는 해외에 있던 조선 문화유산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의미와 함께, 장묘 관련 유물이 공공 전시와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시대 무덤이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라, 고인의 생애와 가문의 기억을 보존하는 기록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장례문화에서도 고인의 삶을 어떻게 남기고 추모할 것인지는 중요한 주제다. 묘비 문안, 봉안당 안치 기록, 추모 영상, 온라인 추모관 등이 현대적 방식이라면, 조선시대 묘지는 그 전통적 형태에 해당한다. 이번에 돌아온 백자 묘지는 과거와 현재의 추모 기록 문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하게 하는 자료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앞으로 두 유물의 성격에 맞는 전시와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묘지 제작 방식, 사대부 장묘문화, 묘소 기록의 의미를 함께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