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박상용 기자】공공기관 직원의 친조부모 사망 때만 장례용품을 지급하고 외조부모 사망 때는 제외한 복지 기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장례 지원 대상을 친가와 외가로 나눈 기존 운영 방식에 제동이 걸리면서 기업 장례복지 전반의 재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3일 인권위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한 공사 소속 직원 A씨의 진정에서 시작됐다. A씨는 회사가 가족수당과 장례용품 지급 기준을 운영하면서 특정 가족관계를 합리적 이유 없이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시정을 요청했다.
장례 부문에서 문제가 된 것은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구분한 지원 기준이었다. 해당 공사는 직원의 친조부모가 사망했을 때는 장례용품을 지급했지만 외조부모 사망 때는 이를 지급하지 않았다. 같은 조부모 사망인데도 친가와 외가를 나눠 장례복지의 범위를 다르게 적용한 셈이다.
가족수당 지급 기준도 함께 논란이 됐다. 공사는 장남과 장녀에게는 부모와 실제 동거 여부와 무관하게 1인당 월 2만원의 가족수당을 지급한 반면, 차남에게는 동거하는 경우에만 가족수당을 지급해 출생순서에 따라 복지 적용 기준을 달리했다.
공사 측은 장남과 장녀가 전통적으로 가계 부양을 책임져 온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장례용품 지급 대상을 친조부모로 한정한 것 역시 노사 합의와 한정된 예산 범위 안에서 다수 직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주민등록표상 동거 여부만으로 실제 부양관계를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도 함께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장남과 장녀의 경우 실제 부양 또는 가계 기여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며, 장례용품 지급 기준 역시 복지제도 운영 여건을 감안한 결과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이 같은 설명만으로는 차별성을 해소할 수 없다고 봤다. 인권위는 "현대 사회는 가족 형태와 부양 구조가 다양화돼 부모 부양이 특정 출생순서의 자녀에게 전속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출생순서만으로 가족수당 지급 여부를 달리 정하는 것은 실제 부양관계나 경제적 부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장례용품 지급 기준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인권위는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모두 민법에 따른 '직계혈족'이므로 조사 용품 지급에 차등을 두는 것은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친조부모만을 장례복지 대상으로 삼은 기준은 부계 중심의 혈통관계를 바탕으로 가족관계를 차등화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장례복지를 단순한 경조사 지원이 아니라 가족 인정 범위와 복지 형평성의 문제로 다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부모 사망에 대한 지원처럼 익숙한 제도도 누구의 죽음을 동일한 가족의 상실로 볼 것인지에 따라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장례용품 지원은 단순한 물품 제공을 넘어 유족의 부담을 덜고 애도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구분하는 기준은 실제 장례 현장의 현실보다 오래된 가족관념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 변화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조장례 업계 역시 이번 판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불식 기업장례서비스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장례용품 지원 대상과 적용 범위를 실제로 정하는 것은 서비스사가 아니라 계약 기업의 복지 기준이기 때문이다.
기업장례서비스는 기업이 임직원과 가족의 장례 발생 시 장례지도사 등 전문 인력과 장례용품, 근조화환, 근조기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기업 복지형 장례지원 제도다. 최근에는 후불식 구조를 기반으로 일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장례용품 납품과 현장 지원까지 수행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며 기업복지와 장례서비스를 결합한 실무형 지원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감안하면 장례 지원의 기준은 단지 비용과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상실을 제도적으로 동등하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장례복지 제도가 실제 가족관계와 애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지원 제도 자체의 설득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에는 가족수당 차등 지급 문제도 함께 포함됐지만 장례 영역에서의 판단은 특히 상징성이 크다. 외조부모의 죽음을 장례복지 대상에서 배제한 기준에 대해 인권위가 차별이라고 못 박으면서 향후 공공기관과 기업의 장례지원 규정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인권위는 해당 공사에 가족수당을 출생순서와 부모와의 동거 여부에 관계없이 지급하고, 외조부모 사망 때도 친조부모 사망 때와 동일하게 장례용품을 지급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결정은 기업 장례복지 제도가 전통적 혈연관계의 위계가 아니라 변화한 가족 현실과 복지 형평성 위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