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박란희 기자】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가유산청이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경찰에 고발했다. 국가유산청은 16일 SH가 매장유산 유존지역인 사업 부지 내 11곳에서 허가 없이 최대 38m 깊이의 시추 작업을 진행해 관련 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발굴 조사 완료 조치가 되지도 않은 땅에서 토목 공사를 위한 시추 작업을 하는 건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현장 조사를 통해 중장비를 철수시킨 데 이어 서울시의 일방적인 사업 강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세운4구역은 2022년부터 진행된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도로 체계와 건물터 590여 동, 우물 199기 등 당시 도성 내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적들이 대거 발견된 곳이다. 특히 마을 입구의 이문 흔적과 소뼈가 묻힌 구덩이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구들이 확인되어 현재 보존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SH는 해명 자료를 통해 해당 시추가 설계 단계의 기초 자료 확보를 위한 조사일 뿐이며 이미 정밀 발굴 조사와 복토 승인을 마친 상태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SH 측은 "현재 조사는 현지 보존 구간과 약 33m 이격해 실시했으며 유구 훼손 우려가 전혀 없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시행사 간의 법적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도 서한을 보내 이번 개발 사업이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세계유산센터는 서울시가 영향평가 실시 여부를 이달 내로 회신하지 않을 경우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현장 실사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길배 유산정책국장은 종묘가 세계유산위원회의 보존 의제에 포함된다는 것은 국제 사회가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증거라며 사태의 휘발성을 우려했다.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이번 갈등이 한국의 세계유산 관리 역량에 대한 국제적 평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시는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달 19일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열어 4월 중으로 사업시행인가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어 정부와의 충돌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국무총리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안건을 신청하는 등 지자체의 단독 행보를 저지하기 위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상태다.
허민 청장은 서울시가 일방적 추진을 멈추고 서울시장과 종로구청장, 국가유산청장이 참여하는 3자 논의 테이블에 나설 것을 공식 제안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995년 한국 최초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종묘의 보존과 도심 재개발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면서 서울 도심의 풍경을 바꿀 결정적 기로에 섰다.
사법 기관의 판단과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향후 세운지구 개발의 향방은 물론 국내 매장유산 보호 절차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남게 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