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김형석 기자】가톨릭 상장례 문화를 한국 현실에 맞게 정착시키고, 본당 중심의 장례와 돌봄 사목의 틀을 세운 김수창 신부(야고보·서울대교구 원로사목)가 23일 병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90세다.
고인은 단순한 종교 의례 집전자에 머물지 않았다. 장례비 부담과 공간 부족으로 고통받던 신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상장례 체계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김 신부는 품위 있는 마지막 이별이 특정 계층만의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교회 공동체가 장례의 주체가 되는 모델을 꾸준히 실천했다.
상조·장례 업계 관점에서 고인의 가장 큰 업적은 가톨릭 상장례의 토착화와 제도화에 있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적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1970년대 홍제동 본당 주임 시절, 열악한 주거 환경과 높은 장례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의 현실을 목격했다. 이는 그가 장례 사목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신부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본당 장례식장 운영을 도입했다. 이는 가정 중심이던 장례를 본당 공동체가 함께하는 사목형 장례로 전환한 선도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실천은 이후 천주교 서울대교구 장례 서비스 체계 정비의 밑바탕이 됐다. 이는 교회 내 장례 서비스가 전문성과 투명성을 갖추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서울대교구 공식 장례 서비스 기관인 평화누리의 출범과 가톨릭계 병원 장례식장의 운영 기준 정립에 그가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는 것이 교계의 중론이다.
현재 평화누리가 실천하는 투명한 절차와 유족 중심 서비스 역시 김 신부의 사목 철학과 맞닿아 있다. 고인의 정신이 오늘날 현대적 장례 시스템 속에 살아 숨 쉬는 셈이다.
김 신부는 장례 문화뿐 아니라 본당 단위의 돌봄 체계 확장에도 큰 힘을 쏟았다. 그는 죽음 이후뿐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의 돌봄 역시 사제의 소명이라 믿었다.
사목국장 재임 시절에는 평신도의 전례 참여 기반을 넓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이 본당 공동체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잠원동 본당에서는 의사와 약사, 호스피스 봉사자가 참여하는 방문간호 체계를 꾸렸다. 이는 본당 기반 복지 모델의 선구적 사례로 이후 의료 사목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순교 신앙과 죽음의 영성 연구에도 매진했다. 현장 사목뿐 아니라 학문적 연구를 통해 사목의 깊이를 더하고자 노력했다.
2003년 은퇴 이후에도 경기도 여주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지역 사목을 도왔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제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지키며 신자들의 곁을 지켰다.
빈소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25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되며, 장지는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으로 결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