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차용환 기자】일본이 140년 내각제 역사상 첫 여성 총리를 맞이했다.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국회에서 제10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공식 선출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 총리 지명선거에서 전체 465표 중 과반(233표)을 웃도는 237표를 얻었고, 참의원 결선 투표에서도 125표를 획득하며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를 제쳤다. 이로써 일본은 1885년 내각제 도입 이후 1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를 배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새 내각을 정식 출범시켰다.
64세의 다카이치는 자민당 내 대표적인 ‘매파’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보수 이념과 경제정책을 계승하며 ‘여자 아베’로 불린다. 그는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세습 정치인이 아닌 드문 여성 정치인으로 “유리천장을 깬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강력한 경쟁자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중도 보수 성향의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했으나, 강경 보수 성향 제2야당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양당은 “일본의 재기를 위해 국가관을 공유하고 전면 협력한다”고 합의서에 명시했으며, 오사카 부(副)수도 지정, 사회보험료 인하, 국회의원 정원 10% 축소 등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유신회는 ‘각외(閣外) 협력’ 형태로 연정에 참여하기로 해 국정 운영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196석)과 유신회(35석)의 합계는 중의원 과반인 233석에 2석 모자라며, 참의원에서도 과반에 5석이 부족하다. 따라서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예산 처리에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의원총회에서 “중·참의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이 없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1당으로서 국정을 이어가야 한다”며 “유연성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확실히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내각 구성에서도 당내 융합을 꾀하는 포석이 엿보인다. 그는 관방장관에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을, 외무상에 모테기 도시미쓰, 총무상에 하야시 요시마사, 방위상에 고이즈미 신지로를 기용할 방침이다. 이는 경쟁자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해 당내 결속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경제 정책 면에서 다카이치는 ‘아베노믹스’의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금융 완화와 대규모 재정 지출을 통해 경기 부양, 기술 혁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고령화·인구감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취임 직후 도쿄증시 닛케이225지수는 1.9% 상승하며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한편, 강경 보수색이 짙은 다카이치 내각 출범으로 한일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해왔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인물이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자학사관’이라 비판한 바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가을 예대제 기간(17∼19일)에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방일 및 APEC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을 고려해 참배를 보류했으나, 보수층 결집을 위해 전격 참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내각이 공명당 대신 유신회와 손잡으며 보수색을 강화한 만큼, 외교·안보·헌법 개정 등 분야에서 한층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소수 여당 체제 속에서 정국 안정과 개혁 추진 사이의 균형이 새 총리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