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의 악몽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당시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던 주민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2014년까지 공사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고,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 지원을 받은 한국전력이 끝내 강행하면서 사회적 파장은 깊게 남았다.
10년이 지난 2025년 9월, 이번에는 특정 지역이 아닌 전북 정읍·김제·임실·완주, 충남 금산·논산·계룡, 대전 서구 등 9개 지자체에서 또다시 송전탑과 송전선로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불붙고 있다. 주민대책위원회가 각 지자체별로 꾸려졌고, 금산군은 이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주민들은 “주민 주도로 입지를 선정해야 하는데 한전은 주민설명회와 의견수렴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은 전남 신안과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2029년 준공 목표의 제9차 신정읍-신계룡 345kV 송전선로 건설 사업과 2030년 제10차 신임실-신계룡 사업을 추진 중이다. 송전탑 높이는 50~100m, 경간거리는 약 50m이며, 2024년 기준 1km당 공사비는 32억 원을 넘는다.
금산군은 이번 갈등의 핵심 무대다. 법원은 지난 2월 주민들의 효력 정지 가처분을 인용했으나, 7월에 한전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이를 뒤집었다. 법원은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이 내부지침일 뿐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주민들은 항고장을 제출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입지선정위원회다. 주민대표 30명 중 19명이 지방의회 의원, 2명이 공무원으로 사실상 순수 주민대표는 9명뿐이다. 게다가 주민대표가 3분의 2 이상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에서는 “껍데기만 주민대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범석 금산군 대책위원장은 “부정 선수를 투입해 경기를 한 것과 같고 잘못된 입지선정위 결정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주민설명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아, 최적 경과대역이 확정된 지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지난 뒤에야 주민들이 알게 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송전선로가 통과할 예정지는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 도립공원 인근으로, 관광경관 훼손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한전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겠다”며 “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이 체감하지 못한 것 같다. 추가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입지선정위 주민대표는 지자체 추천으로 구성된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송전탑 피해 사례도 주민들의 불안을 키운다. 전자파 공포, 암 발병 증가, 부동산 가치 하락, 축산 피해, 환경 훼손, 주민 간 갈등 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전은 “국가 전력망 안정”을 이유로 사업 추진은 불가피하다고 맞선다.
일요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박범석 금산군 대책위원장은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기업이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며 “이는 사익과 공익의 대결이 아니라 절차를 무시한 채 효율성만 좇는 위태로운 공익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더 큰 공익의 충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업 추진을 잠시 멈추고 절차적 하자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제2의 밀양 사태를 막고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라며, 송전선 지중화 같은 대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금산군을 비롯한 각 지역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갈등이 밀양 사태처럼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