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천궁신전...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앞날은?

2012.05.23 09:54:52

올해 대선은 예측 불허... 와룡선생 희망 한국을 말하다

 

 

 

 

무속신앙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신앙으로 유구한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다.

과거에는 국가적인 대소사에 무녀의 힘을 빌려 길흉을 점보기도 했고, 굿 등을 통해 성사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무속을 무작정 미신으로 치부하고 터부시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가 그 이유였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우리민족 고유의 무속신앙은 불교와 기독교 유교가 생기기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 뿌리는 엄연히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통해 일상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특별기획 & 한국의 샤머니즘

 

우리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인 무속문화의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평택 천궁신전의 와룡선생으로 인근의 수경암 정심보살과 함께 무속문화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한국의 굿판을 정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무속도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제자다운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하며, 더 이상은 우리사회가 무속을 터부시 하지 않고, 사회적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 제자들부터가 먼저 대오각성으로 변해야 합니다.”

 

선생의 말에 존경심이 일었다.

진정성이 있었고, 이미 범부의 생각까지 간파한 듯, 선생의 첫 일성은 화두 그 자체가 반성이었다. 점점 더 심화되어만 가고 있는 무속문화의 퇴행을 걱정하는 제자의 한 사람으로 그 책임이 마치 자신에게 있는 듯, 선생은 줄곧 자성과 성찰을 강조했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석정리 1099 번지.

전형적인 시골농가의 한옥 집을 개조해 만든 천궁신전은 한낮 미명에 불과한 범부가 보기에도 그 신묘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과 대조되며 그 신당의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평화롭기 그지없다.

 

예언 적중... 타고 난 점사로 길흉화복을 정확히 예측.

올해 대선은 예측불허...8월이면 대선 당선자 윤곽 확연히 드러날 것.

 

 

지난 2010 1월 새해 국운을 예측하기 위해 각 언론사는 당대의 역술 명망가들을 찾았다.

그러나 당시는 그 누구도 앞으로 1년 후 전개 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대 놓고 예측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유독 선생만은 달랐다. 김정일의 운명이 내년이면 다 할 것이라는 상식 밖의 예측을 내 놓기에 이른다. 물론 선생의 예언은 적중했다. 오차의 범위도 2개월 남짓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었다. 이후 선생은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되며 입소문을 통해 예언 적중 와룡선생이라는 유명한 타이틀을 지니게 된다.

 

선생은 지난 1980년대 초, 영문도 모른 채 귀신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신제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30년 남짓 신의 제자로 살아오며, 지난 2008년에는 토속신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 무속연합회를 발족하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곧 무속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전통문화의 계승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한 사람 희생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발로였다.

 

특히 선생은 해마다 국태민안 인왕산 국사당 산신대제를 주관하는 등 무속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선두에서 한국의 굿판을 지휘해 왔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돌파구가 되고 희망을 주어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좋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는 것은 조만간 좋은 일이 시작된다는 징조이기도 하지요.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연속입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고,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생기듯, 매사 믿음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곧 자신감이기도 하지요.

 

선생은 예언 말고도령 총잡이 신 가리 굿으로도 유명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신 가리 굿의 대가로 선생은 결코 무당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무속인의 길이 험난함을 자신의 사연을 예로 들기도 했다. 선생도 신의 제자가 되기까지에는 다른 무당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이 그렇듯, 선생 또한 혹독한 신병을 앓았고, 그 신병을 치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 오늘날의 자신이 있기까지 신병이라는 혹독한 과정이 있었기에,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 드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선생의 나이 6세 때, 선생은 이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 입구의 성황당 나무위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절하여 죽을 고비를 넘긴 것만도 수차례, 부모님은 그런 선생을 죽은 목숨으로까지 취급했다고 한다.

 

선생의 나이 17, 하지만 선생은 성장과정에서도 시련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몸이 너무 아파서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 것만도 여러 번, 심지어는 혀가 썩는 고통까지도 견뎌내야만 했다. 바로 이런 이유가 선생의 첫 번째 신 내림을 받게 된 계기라고 했다.

 

선생의 두 번째 신 내림은 그 고통이 더했다. 첫 번째 신 내림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제자가 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선생은 끝까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평범하게 살고자 철도 기술자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자의 길이 선생의 진짜 운명이었던 것인지 선생은 마침내 두 번째 신 내림을 받기에 이른다. 이내 선생은 자신의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구제에 큰 역할을 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라는 사명으로 여기며 제자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선생은 때로는 묵묵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말없이 걷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가 제자의 길을 가고 있는 원동력은 두 번의 신 내림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선생은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은 가족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않고자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제자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선생이 제자의 길을 걷기까지 선생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시밭길로 표현했다.

더구나 그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것과 같은 고통까지도 경험했음을 진솔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은 이제는 다시 태어나도 제자의 길을 걷는데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신병을 앓는 어려운 제자가 진정으로 제자다운 제자로 성장하기 위해 신령님의 맑은 명기를 통해 제자들의 안위를 밝혀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자신의 또 다른 사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와룡선생...한국의 희망정치를 말하다.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비극의 정치는 이제 더 이상은 없을 것...

 

 

“죽을 때까지 령 총잡이 신 굿, 신 가리 굿으로 1명이라도 더 제대로 된 신 내림을 통해 올바른 제자를 키워내고 싶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지나온 날에 대해 제자로 살면서 신 내림 굿을 잘하거나 사주풀이를 잘했을 때가 아니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 번은 빙의가 돼 찾아온 26살의 젊은 여성에게 신 내림 굿은 결코 당신의 길이 아니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 내림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영적인 치료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그 여성은 다른 제자에게서 신을 받아들이는 신 내림 굿을 받기는 했지만, 선생은 결코 그 여성이 제자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고 한다. 제자가 될 운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정신으로 무작정 신을 받아들이고 제자가 되기 위해 내방하는 사람들을 선생은 과감하게 돌려보낸다고 했다.

 

그 이유는 상대가 제자가 된다하여 그것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는 일도 아니고, 올바른 무속을 위하는 길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그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제자가 될 운명이 아닌 사람에게 신 내림 굿을 하는 것은 감기 환자에게 뇌종양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선생은 주장했다.

 

 

무속문화의 진정한 계승과 발전을 위해 토속신앙의 정립 필요.

부인 수경암 정심보살...굿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무당.

 

 

선생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당분간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비극의 정치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정치, 더 이상은 국민들에게 멀어지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한 선생은 현 정치상황에 대해 한 마디로 욕설과 패싸움이 오가는 난장판 정치로 당분간은 그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선명하게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패싸움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해외 토픽코너에 아직도 실리고 있다며, 선생은 이런 우리나라의 현 정치상황을밀림속의 맹수와도 같다.” 라는 표현으로 작금의 형국을 진단하기도 했다.

 

선생은 “6.25전쟁 이후 이어져오는 역대 정치와 현시대 정치인들을 보면 정치란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상대방을 통제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서 유지를 도모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권과 권력 다툼이 있어 서로 견제하고 싸우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후진적 정치문화라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국민 대다수가 정치개혁은 꼭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문화의 수정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지나친 진영논리에 휩싸여 당파적 주장을 일삼는 문화가 이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비방과 흑색선전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호 상생을 모색하고 당파적 주장보다는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서 건강한 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한국정치에 희망은 있다고도 했다. 올 연말 대선에 대통령 당선자가 누구이던지 간에 우리 한국정치에 더 이상의 후퇴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든 액운이 점차 물러가고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는데, 그 시점이 바로 올 연말 대선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했다.

 

한편 선생의 부인으로 평택 인근에서 꽤나 유명한 수경암 정심보살의 경우도 지역에서는 점사 잘 보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타고난 신기(神技)로 와룡선생 그 이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특히 보살의 경우 굿을 예술의 혼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마력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초파일을 보름정도 앞둔 지난 5월초, 충남 아산시 염치읍 민속공연장에서 펼쳐진 선생과 보살의 굿 한마당은 그 기복적 신앙을 떠나 우리 민족 고유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전통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바 있다. 제자의 신 내림을 영도하는 굿 이었는데 그 광경이 아직도 범부의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된다.

 

자고로 토속신앙은 우리의 넋이요, 혼이라고 했다. 토속신앙의 건전한 발전과 계승이 선생의 순수한 사명감과 열정을 통해 모두가 함께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그 선두에서 한국의 굿판을 리더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하태곤 기자(tkha715@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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